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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Mar 05. 2021

“그 책 재밌어요!”

위로 수집: 취향 말하기


면허가 없는 나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남편의 퇴근이 늦어질 때면 마음 따스한 분들의 차를 타고 감사히 귀가하거나 에어팟을 꼽고 노래를 들으며 평소에 방출하지 못하는 흥을 거리에서 최대로 방출하면서 집까지 걸어간다. 큰길을 따라 집까지 걷다 보면 야탑역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 야탑역에는 집이라는 목적지를 잊어버리도록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참 많다. 집에 가다가 갑자기 배가 고프기도 하고, 집에 가다가 갑자기 떨어진 화장품이 생각나기도 하고, 집에 가다가 갑자기 알라딘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렇다. 사실 나를 제일 많이 유혹하는 곳은 야탑역 알라딘 중고서점이다. 이사 온 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서가에 들어온 책을 스캔하고, 사고, 스캔하고, 사고, 아직 다 못 읽었는데도 사고, 몇 권은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놓기도 한다.


야탑역에 있는 초밥집에서 식사 약속이 있었다. 맛있고 가성비 좋은 초밥을 먹고 난 후 카페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렇게 코 앞까지 왔는데 알라딘에 안 갈 수가 없겠군. 어차피 남편은 오늘 늦게 온다고 했고, 집에 가봐야 퍼지기만 할 것이고, 지금 있는 곳에서 고작 스무 걸음 정도만 걸으면 최애 힐링 장소에 도착할 수 있으니, 도대체 안 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아주 즐겁게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눈 후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알라딘에 입성했다.



워낙 경제관념이 투철하지 않아 문제인 데다 책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아 난감한 인생이라서, 영영 끝나지 않을 나의 책 욕심을 일찌감치 눈치챈 남편은 “그래, 책에는 돈 안 아껴도 돼”라는 말을 되풀이하곤 한다. 명목상 듣는 사람은 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해서 간혹 미안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약 5초 만에 사라지는 것은 본인도 카카오 페이지의 웹소설을 꽤나 즐기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의 취미 생활을 암묵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우리의 룰이므로 나는 사야 할 책, 사고 싶은 책, 어쩐지 나중을 위해 필요할 것만 같은 책들을 아낌없이 사모으곤 한다.


그날도 즐거운 마음으로 알라딘에 들어가 무거운 가방과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의자에 턱 내려놓고는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두 손 가득 무겁게 책을 골랐다. 알라딘에 들어가면 거진 비슷한 패턴이다. 먼저 검색대에서 몇몇 이름들을 검색해 새로 들어온 책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다음 출간 17개월 된 도서-> 한국 소설-> 철학, 글쓰기(오로지 글쓰기만 본다.)-> 사회문제-> (예의상) 기독교. 이런 루틴으로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적게는 두 권부터 많게는 일곱 여덟 권까지 손에 쥐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일곱 권이나 들고서도 조금 아쉬워서 한국 소설 서가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입구에 서서 큰 소리로 직원에게 “몇 시까지 해요?”하고 물었다. 직원은 “열 시요.”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여덟 시 반쯤이었다. 아저씨는 망설임 없이 한국 소설 서가로 오더니 내 옆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이미 고른 채 한참을 보던 아저씨는 불현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은 어떤 작가가 유명해요? 나는 옛날 사람이라 옛날 소설들 밖에 몰라.” 그러면서 아저씨는 “이청준...”을 시작으로 자신이 읽었던 작가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교과서에서 뵀던 그 선생님들이셨다. 갑작스레 요즘 어떤 작가가 유명하냐는 말에 “너무 많은데요...”라며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그냥 이름만 쭉 불러봐요. 내가 알아서 골라보게. 남자 작가로.”라고 말했다. 세상에 남자 작가로 콕 집어서 말하라니. 가뜩이나 세대가 달라 조심스럽고, 아저씨의 취향을 몰라 우물쭈물하는데 거기에 ‘남자 작가’라는 조건이 더해지니 (내 책장은 대다수 여자 작가들-여성 서사,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붙는-의 책이라) 더욱 할 말이 없었다. ‘남자 작가’라는 조건에 ‘아저씨, 우린 아마 취향이 다를 거예요.’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김영하 작가, 김연수 작가 등의 이름을 말하고선 아저씨 손에 있는 책은 뭔지 힐끗 쳐다봤다. 놀랍게도 남자 작가를 찾던 아저씨의 손에는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가 들려 있었다. 한밤중에 이북 리더기를 붙잡고 눈물 펑펑 흘리면서 봤던, 굉장히 좋았던 책이라 “그 책 재밌어요! 재밌는 책 잘 고르신 것 같은데요.”하고 말았다. 아저씨는 요즘 김훈은 글이 영 아니야 나이가 들었나 봐, 박범신은 아직 괜찮더구먼, 하면서 열심히 서가를 훑다가 나에게 박범신 작가의 책을 권했고, 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제 취향은 아니라서요.”하고 자리를 떴다.


겉으로는 낯을 가리고 내적으로는 사교성이 좋은 나에게 딱히 내용이랄 것도 없었던 아저씨와의 짧은 대화는 생각보다 좋았는데, 이제까지 책 취향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대화를 누군가와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취향을 공유하는 것, 심지어 비슷한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참 즐겁고 기쁜 일이지만 나와 비슷한 책을 읽는(취향이 같은) 사람과 현실 세계에서 신나게 떠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따금씩 저자와 만나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강의를 신청해서 가거나 #북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하고 싶은 욕구’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쌍방의 통행은 아니다. 일방적으로 듣고, 일방적으로 업로드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아저씨와 책 취향은 달랐지만, 딱히 서로에게 유익한 추천이 되지도 않았지만, 그냥 "그 작가 제 취향 아닌데요" 라던지 "그 책 재밌어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를 통해 낯선 사람과 나의 취향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들뜨는 마음이었다. 출근했던 가방에, 책을 일곱 권이나 들어 어깨는 빠질 것 같았지만 ‘편견을 버리고 아저씨가 추천해준 박범신 작가의 책을 한 번 읽어볼까’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몇 걸음 안가 집 앞이었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그러니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을 술술 풀어놓은 에세이 시리즈가 인기 있는 것이 아닐까.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글을 읽고 그와 나의 어떤 공통된 정서나 취향, 경험과 이야기를 발견하고서 내적 환호성을 지르는 경험도 좋지만, 가끔은 나도 듣는 주체가 아닌 말하는 주체가 되고 싶다. 물론 그래서 지금처럼 구구절절 글을 써 내려가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취향에 대해 가감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현실 친구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랄까. 대게 감정이든 지식이든 공유하면 서로에게서 더 풍부하게 가공되기 마련일 텐데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혼자 읽고, 줄을 긋고, 메모하고, 글을 쓰다 보니 그런 풍부함이 간혹 간절하기도 하다.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정도를 넘어서면 가장 만만한 남편에게 제발 읽어봐라, 꼭 좀 읽어봐라, 나랑 공감 좀 하자, 공유 좀 하자, 이 책 미쳤다 등 여러 개의 메시지를 보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카카오 페이지 웹 소설 제목이다. 물끄러미 웹 소설 제목을 바라보다가 나도 그의 취향에 동참해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래, 그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지-라는 생각으로 주제를 바꾼다.


그러니 짧지만 “그 책 좋아요!”라고 내지른 한 마디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곧장 TMI가 되어버릴, 심지어는 묻지도 않았는데 ‘책’ 얘기하는 거만하고 허세 있는 녀석이 되어버릴 수 있는 주제이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낼 북 파트너를 찾고 있는 아저씨에게는 ‘그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 좋았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가 얼마나 유용한 정보인가. 예상해 보건대 나의 한 마디가 자신의 손에 든 책에 대한 아저씨의 신뢰도를 단 1% 정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취향을 마음껏 공유하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에, 잔잔한 위로와 기쁨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만족스러운 ‘알라딘 데이’였다.


오늘의 위로는 '취향 말하기'다. 상당히 긴 시간 일방적인 취향 공유를 이어가야 하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 그런데 누군가와 취향을 말하고 공유하며 신날 날이 언젠가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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