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위로 수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ey Aug 12. 2021

푸른숲 소설선 ‘The Others’를 아세요?

위로 수집: 64,520원의 플렉스(flex)

영화 <카모메 식당>을 좋아한다. 잔잔한 분위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핀란드 전경에, 귀여운 세 명의 여성이 서 있는 식당까지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보고만 있어도 절로 힐링이다. 언젠가 교보문고에 갔다가 <카모메 식당> 책을 발견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찾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우연찮게 서가에서 발견했다. 책 소개에 따르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소설 집필을 무레 요코 작가에게 요청했고, 완성된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원래가 충동구매 체질이기도 하고 덕질에 돈을 아끼는 유형은 아니어서 바로 구매해왔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보는데 ‘디 아더스 The Others 7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색해보니 푸른숲 출판사의 ‘디 아더스’ 시리즈의 7권이었다. 이 시리즈로 2010-2012년 사이에 총 10권이 출간되었다. 그중 내가 구매한 <카모메 식당>을 제외한 9권은 현재 전부 절판이다. 아무래도 잘 안 된 걸까? 도대체 어떤 시리즈이길래 2012년 이후로 출간도 되지 않고 한 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절판일까 궁금해서 조금 더 찾아봤다. ‘푸른숲 소설선 디 아더스(The others)’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디 아더스’ 시리즈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글이 있었다.


푸른숲은 문학성을 담보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이 순수한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는 소설,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와 감수성을 발견하게 하는 소설, 또 지금껏 맛보지 못한 다른 시선과 취향을 경험하게 해주는 소설들을 선별하여 외국 소설선 ‘디 아더스(The Others)’ 시리즈를 선보이게 되었다.

‘디 아더스’ 시리즈의 기획 기준은 소설 본연의 역할, 즉 이야기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현실을 무장 해제시키는 기발한 상상력, 독특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탄탄한 내러티브를 갖춘 소설들을 선보인다. 새로운 세계관, 다양한 문화적 코드, 현실을 비틀어보는 예리한 시선 등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작품들 속에서, 독자들이 주체적으로 즐기고,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즐거운 소설 읽기 바람을 일으키고자 한다.

더 나아가, ‘디 아더스’ 시리즈는 오늘날 소설 독자들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아이폰 등 신기술을 통해 상상을 넘어선 세계를 경험하고 그런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면서도, 라이카 구형 카메라에 탐닉하며 북촌 골목길의 정서를 사랑하고 인디 영화를 즐기는 등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독자들과 호흡하고자 한다. 즉 책 읽기를 통해, ‘우리’의 취향을 벗어나 나를 표현하고 나아가 나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한다.

- 네이버 블로그 ‘푸른숲 소설선 디 아더스(The Other)’에서 발췌


2010년 어간이 기억난다. 주변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스마트폰을 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 혼자만 컴퓨터로 네이트온에 접속하고 있었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단체 카톡방에 들어가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사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10년 전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푸른숲 출판사에서는 그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야심 차게 ‘디 아더스’ 소설선을 기획했나 보다. 새로운 세계, 다른 시선과 취향, 기발한 상상력, 독특하고 인상적인 캐릭터, 새로운 세계관, 다양한 문화적 코드, 주체적, 상상을 넘어선 세계와 같은 단어들에서 물씬 기획의 각오와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2010년에 쓴 이 소개글을 2021년에 읽으면서, “즉 책 읽기를 통해, ‘우리’의 취향을 벗어나 나를 표현하고 나아가 나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품들”이라는 말에 설마 나를 위한 시리즈인가 하는 마음이 저 구석 어딘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당시 나는 명확하게 ‘우리’의 취향인 기욤 뮈소와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고작 두 작가를 읽고서 ‘어마마? 내 취향은 프랑스 쪽인가?’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해댔던 기억이 있다. 내가 <종이 여자>에 홀딱 반해 기욤 뮈소를 사모을 때 나는 그것이 ‘자신만의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유명한 작가였고, 베스트셀러였고, 주변 모두가 아는 그 소설이었다. 너무 재밌는 소설이어서 사실은 그게 당연했다.  ‘디 아더스’ 시리즈 설명을 쭉 읽으면서 페이스북에 책 사진을 찍어 올리던 그때 알았더라면 허세 부리기에 딱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


그러다 문득 사람은 변하지 않고, 나의 허세도 어디 가지 않고, 인스타그램으로 매체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책 사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지금이라도 허세 부려볼까 생각이 들었다. 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읽고 보니 뛰어난 이야기성, 기발한 상상력, 인상적인 캐릭터, 탄탄한 내러티브와 같은 말들에서 이미 신뢰가 갔다. 괜찮은데? 어차피 그때나 지금이나 허세는 매한가지인 데다 “나를 표현하고 나아가 나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원하는 독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니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았다. 원래 9 to 6 직장인의 힐링과 위로는 덕질에 돈을 쏟아붓는 데 있는 것 아니었나, 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시리즈 10권을 리스트업 했다.


1.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공보경 옮김)

2. 데지레 클럽, 9월 여름 (로사 몬태로 지음/송병선 옮김)

3. 루시아, 거짓말의 기억(로사 몬테로 지음/송병선 옮김)

4. 아무 일도 없었고 모든 일이 있었던 (제프리 무어 지음/정영목 옮김)

5. 지도 도둑 (에두아르도 라고 지음/고인경 옮김)

6. 기억술사 1,2 (제프리 무어/윤미연 옮김)

7. 카모메 식당 (무레 요코 지음/권남희 옮김)

8. 나를 브루클린이라 불러주오 (에두아르도 라고 지음/ 고인경 옮김)

9. 에드윈 멀하우스, 완벽하고 잔인한 인생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김석희 옮김)

10.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 (사이먼 밴 부이 지음/공보경 옮김)


리스트업이 끝났다. 한 권씩 떨리는 마음으로 온라인 중고서점에 검색을 해보았다. 다행히 모든 책이 재고가 넉넉했다. 심지어 최상, 상의 상태였다. 신나고도 신중하게 한 권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중고책은 배송비가 더 나오니까 한 셀러에게 두세 권을 사면 좋겠다 싶어 열심히 검색했으나 여러 권을 가지고 있는 셀러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배송비를 줄여가며 전부 주문했다.(핑계 김에 장바구니에 있던 책 두 권도 같이 주문했다.) 심지어 <나를 브루클린이라 불러주오>는 동네 중고서점에 떡하니 있는 것을 확인, 퇴근하고 모셔왔다. 여러 책을 각각 다른 셀러가 보내다 보니 택배 알림이 여러 개씩 떴다. 세네 개씩 쌓여 있는 택배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하나둘 씩 쌓여가는 시리즈 책이 이렇게 좋을 수가! 무심한 듯 흘림체로 된 로고도 예쁘고, 표지들도 마음에 들고, 아무튼 시리즈 설명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시리즈 설명을 보고 혹해서 뒤늦게 10년 전 출간된 소설선 시리즈를 사모을 줄이야. 그리고 거기서 이렇게나 소확행을 느낄 줄이야. 역시 행복이고 위로고 기쁨이고 멀리 있지 않다. 64,520원과 택배 뜯는 즐거움이면 이번 한 주 치 정도의 위로는 거뜬히 수집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게 오늘의 위로는 '64,520원의 플렉스(flex)'다. 나를 표현하고 나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자 하는 독자인 나에게 보내는 위로.

매거진의 이전글 “그 책 재밌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