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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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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Jun 15. 2023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4개월 아기, 요로감염에 걸리다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계획했던 토요일 점심이었다. 외출 준비를 하는 도중 아기를 안았는데 몸이 평소보다 뜨거웠다. 체온은 37.5도 근처를 웃돌고 있었다. 아기들은 원래 체온이 높은 편이라 아직 열이 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평소 아기의 체온은 성인과 비슷하게 36.5도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니 평소보다 1도가 높다는 사실이 불안했지만, 아기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보여 우선은 계획대로 외식을 했다.


일요일 오전, 아기의 체온이 38도를 넘었다. 명백한 고열이었다. 황급히 주말에 진료하는 소아과를 찾았다. 한참을 기다려 진찰을 받았다. 아기의 기관지는 깨끗했다. 감기가 아니었다. 이유가 없는 열은 요로감염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요로감염은 해열제로 열이 떨어지지 않으니, 우선 해열제를 먹여보고 계속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소변 검사 패치를 붙인 채 내원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열제와 소변 패치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아기의 열이 떨어졌다.


월요일과 화요일, 아기의 컨디션은 좋았다. 열도 없었다. 사실 없었는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기의 몸이 뜨겁지 않았고, 잘 먹고 잘 지내기에 완전히 괜찮아진 줄 알았다. 주변에서 다들 백일 즈음 되면 이유 없이 아기가 아프다던데, 그 백일거리가 온 건가 싶었다.


그리고 수요일, 아기의 열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38도가 또 넘었다. 원래 가던 동네 소아과로 향했다. 목이 부어있다고,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4개월 아기가 감기에 걸리기는 쉽지 않은데, 좀 추웠나?” 무심히 툭 던진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기의 아빠와 나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사실 며칠 전 베란다 문을 닫지 않은 채 잠들었던 것이다. 아기의 손과 발이 찼던 기억이 났다. 우리 때문에 아기가 감기에 걸렸구나. 고작 베란다 문을 닫지 않은 작고 사소한 일 때문에. 자책도 하고 서로를 탓하기도 했다. 해열제를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목요일 새벽, 아기의 열은 39도를 넘어섰다. 아직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에게 39도는 심한 고열이었다. 응급실에 가야 했다. 아기의 아빠는 검색을 하고 전화를 돌리며 가까운 큰 병원에 소아응급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나는 서둘러 아기의 짐을 쌌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소아응급실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로 가야 했다. 서울에도 세 군데밖에 없었다. 어디가 가장 가까운지 거리를 재며 서둘러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 1인 밖에 출입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기와 함께 들어가고, 아기의 아빠는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비강검사와 소변검사를 했다. 비강검사는 금방 끝났다. 문제는 소변 검사였다. 아기는 열이 오르자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겨우 잠이 들었을 때 응급실에 가기 위해 사부작 대느라 잠에서 깨버렸다. 아기는 심각하게 피곤했다. 한창 수유 정체기였던 터라, 분유를 먹은 지는 한참이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기다려도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먹여서 소변을 보게 하려 했지만 아기는 먹지 않았다. 아기는 평소에도 먹는 것보다 자는 것이 먼저다. 수유를 한 지 4-5시간이 지나고 배가 고플 시간이 와도 제대로 자지 못해 힘들면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자고 피곤이 풀려야만 먹는다. 어쩔 수 없이 응급실 의자에 앉아 전전긍긍하며 아기의 피곤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기다렸다. 타이밍을 보며 다 식은 분유를 입에 가져다 대니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수유와 동시에 소변을 보았다. 소변 패치를 떼기까지 거진 2시간이 걸렸다. 간호사가 패치를 가져가고, 그때부터 또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 아기는 요로감염이었다. 요도에 병균이 침투한 것이다. 항생제를 10일 치 처방받았다. 항생제를 먹으면 이틀 안에 열이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토요일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방전을 받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병원 근처 약국들은 문을 열지 않았고, 동네 약국에서는 쉽게 처방받을 수 없는 약이라 동네로 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으려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시간을 더 기다려 약을 받았다. 아기와 아기의 아빠, 나는 모두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기 시작한 목요일, 아기는 이제까지 중 가장 아파 보였다. 접종열이 올랐을 때도 그저 힘없이 늘어지는 정도였는데, 이날은 달랐다. 예전에 아기의 아빠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고열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열이 오르면 사람이 헛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다. 마음이 많이 좋지 않았다. 이날도 똑같았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는 힘없이 누워서 폭풍 옹알이를 해댔다. 평소의 옹알이와는 달랐다. 열이 올라 헛소리를 하는 어른 사람처럼, 쉴 새 없이 옹알이를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기도 열이 오르면 헛소리, 아니 헛옹알이를 하는구나.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렇게 목요일에 정점을 찍고, 아기의 열은 천천히 내려갔다. 다행히 금요일 밤에는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지난 4월, 아기가 만 4개월을 갓 지났을 때의 일이다.



아기가 요로감염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사 선생님께 질문했다. “요로감염은 왜 걸리나요?” 질문을 하며 나의 마음속에서는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계속 복기하고 있었다. 나의 질문은 의사 선생님에게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야기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대답은 다분히 의학적이었다. 아기들은 아직 요도가 짧기 때문에 균이 요도를 타고 올라가 감염이 된 것이고, 몸이 균을 이겨내기 위해 열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요로감염에 왜 걸리는지 의학적으로 설명한 후 의사 선생님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아기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예요.” 나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마음을 읽은 것인지, 다른 많은 부모님들이 나와 같은 얼굴로 질문을 했던 것인지, 그저 선생님의 성격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에게는 그 말이 “엄마가 따로 잘못한 건 없어요.”라고 들렸다. 그 순간 조금 울컥했는데, 초면인 데다 새벽 내내 응급실에서 진료를 본 의사 선생님 앞에서 민폐를 끼칠 순 없지, 하며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그 말을 아기의 아빠에게 전했다. 아기의 아빠도 분명 차 안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복기했을 것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담백한 의학적 설명과 무심한 한 마디로 인해 아기의 아빠와 나는 멘털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 아기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우리의 멘털은 다시 흔들렸고 마음은 요동쳤다. 대변을 제때 치워주지 않았느냐는 물음은 가벼운 것이었다. 어쩐지 지난번에 보니 기저귀를 잘 갈지 않더라는 말, 어른이 편하려고 천기저귀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들을 들었을 때 아기의 아빠와 나는 마음이 많이 상했다. 새벽 내내 응급실에서 눈 뜬 채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허겁지겁 모자란 잠을 채워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우리의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기에게 하루 3번 꼬박꼬박 약을 먹여야 했다. 이제까지 모유와 분유만 먹었던 아기는 강제로 입을 벌리고 약을 넣는 시간 자체를 괴로워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항생제를 시간 맞춰 먹지 못하면 균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을 먹는 시간마다 아기도 괴로웠고 우리도 괴로웠다. 그런 우리에게 그래서 너희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아기가 아프냐고 묻는 것을 넘어, 너희가 그것을 잘못해서 아기가 아픈 거라는 말을 들으니 더 마음이 어려웠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에도 우리의 대화는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요로감염을 검색하고 그것의 원인에 대해 검색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기저귀를 자주 갈지 않은 게 맞는 것 같아. 아니야 우리 정도면 정말 자주 갈았어. 우리는 대변을 물티슈로 대충 닦고 넘어간 적도 없잖아. 늘 물로 닦아줬는데? 아니야, 생각해 봐. 몇 주전에 기저귀 개수가 이거밖에 안 됐었잖아. 요로감염이 통목욕을 하기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는데? 그렇네. 우리가 아기 욕조를 제대로 안 닦아서 그런가 봐. 아기가 수유 정체기라 많이 먹지도 않았잖아. 수분이 부족해서 더 안 좋았던 걸까? 억지로라도 먹였어야 했던 걸까? 아니야. 자기가 먹기 싫다는데 어떻게 먹여. 처음 열이 났을 때 바로 소변 검사를 했어야 했는데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서 아기가 더 힘들었어. 그러게, 우리가 너무 무지했네.

쉴 새 없이 대화가 이어졌고 모든 대화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분명 바빴고 열심히 아기를 돌봤음에도 당연하게 게으른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게을렀던 부분들만 더욱 선명해졌다. 이것 때문에 아기가 아팠을까, 이것 때문에 아기가 힘들었을까, 그렇게 쉴 새 없이 생각하면서 반복적으로 아기의 열을 쟀다. 마음속으로 나를 탓하기도 하고 쟤를 탓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10일이 지나갔다.



아기가 아픈 것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우리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기는 평소에도 대변을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배변 활동이 활발하다. 하루에 3-4회씩 변을 보기도 한다. 모유를 먹어 더 활발했을 것이다. 대변 횟수가 많으니 당연히 균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대변을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오랜 시간 아기의 기저귀를 방치한 적은 없었다. 겨울에 태어나 아직 만 4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니 늘 집에 있었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갈지 못하는 상황 자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기는 요로감염에 걸렸다. 그것은 아기의 아빠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기가 아픈 이유를 우리에게서 찾고 있었다. 우리뿐만 아니었다. 우리의 부모님도 아기가 아픈 것은 우리의 어떠한 행동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듯했다. 내가 너를 키울 땐 소변을 한 번만 봐도 기저귀를 갈았어, 내가 너를 키울 땐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어 같은 말을 들으며 우리를 그렇게 열심히 키워주셔서 감사해야 하는 건지, 그저 나를 탓하는 말이기에 기분 나빠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기의 아빠와 나는 긴 대화 끝에 이런 결론을 맺었다. “우리는 있잖아. 나중에 아기가 부모가 되어서 ‘아기의 아기’가 아프다고 전화를 하면 이런 말들은 절대 하지 말자. 그냥 요리할 정신도 없으니 밥 사 먹으라고 돈을 보내주자.”


최근 2차 영유아 검진에 갔다. 요로감염은 쉽게 재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관리하고 돌봐야 할지 여쭈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선천적인 몸의 구조에 의한 것이라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대답을 하셨다. 그냥 열이 나면 빠르게 소변 검사를 하러 오라고만 하셨다.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은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무언가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우리 자신부터 왜 자꾸 병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까? 아기가 아픈 이유는 당연하게도 나쁜 균 때문인데, 내가 그 균을 아기에게 주입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어야 할까? 왜 아기를 키우는 나의 방식이 의심을 받아야 할까?


아기의 아빠와 나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줄곧 환상의 파트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열심히 아기를 돌본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기를 위해 힘을 쓰고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마음을 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기가 늘 평안할 수는 없다. 요로감염이 다음번에는 어떤 질병으로, 어떤 상황으로 우리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가 자신을 탓하고, 서로를 탓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누군가가 잘잘못을 가리는 말을 들으며 무너질 것이라 상상하니 그건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면서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천년만년 환상의 파트너로 지낼 수 있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태어나 우리에게까지 온 건지
나도 모르는 새에 피어나 우리 사이에 큰 상처로 자라도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지 않도록

-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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