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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삶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고

by haley

현주언니,


언니의 첫 편지를 꽤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글을 나누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언니의 편지를 읽고 나니 저도 당장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쓰지 못한 몸으로 잠드는 많은 날, 그게 요즘 저의 일상이기도 하니까요.

몇 주 전 저의 '읽고 쓰는 삶'에 대한 근황을 묻는 언니의 DM을 받았을 때도 그 메시지를 참 여러 번 읽었습니다. SNS에서 알게 되어 먼발치에 있는 듯했던 언니가 요즘 제 삶의 가장 힘든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셨어요.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조용히 켠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아주 잠깐 눈물을 훔쳤습니다. 짧은 메시지에 담긴 언니의 간절함과 답답함이 제 안에 있는 것과 같다고 느꼈어요.


저도 현재 4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로스터리 카페와 소규모 로스팅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페를 오픈한 지는 이제 2년 차입니다. 초보 자영업자이자 초보 엄마, 초보 워킹맘인 저는 지난 2년 동안 감히 '읽고 쓰는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언니가 두 아이를 보며 그러하셨듯, 눈앞에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거든요. 아이는 쉴 새 없이 엄마를 찾고요.

역설적이게도 읽고 쓰지 못한 지난 2년 간, 나에게 '읽고 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오히려 선명해졌습니다. 하지 못하니 명확히 알겠더라고요. 모두에게는 자신을 다독이고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그게 '읽고 쓰는 시간'이었어요. 아이를 낳기 전, 저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삶을, 머릿속을, 마음을, 감정을 정돈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아이를 낳고 일을 시작하며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 상태로 2년이 흘렀으니 '읽고 쓰는 삶'의 근황을 묻는 언니의 메시지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요.


언니의 편지를 읽고 같은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글 쓰는 여자들'에 대한 책을 꽤나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무얼 읽을까 고민하다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택했습니다.

글 쓰는 여자들의 삶을 담은 책을 읽다 보면 꽤나 입체적으로 내 삶을 그들의 삶과 맞닿아 놓을 수 있어요. 기자로 일하며 남성 중심 사회를 깨닫고 미친 듯이 페미니즘 책을 찾아 읽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모습에서는 몇 해 전 저의 모습을 떠올렸고, 출산과 육아에 떠밀리다 못해 결국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하리란 생각에 삶을 놓은 실비아 플러스의 모습에서는 근래 저의 좌절과 무기력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언니가 이 책을 읽는다면 목차에 있는 많은 여성 작가 중 누구의 모습에 언니의 삶을 나란히 두고 읽을까 문득 궁금합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유독 눈에 들어온 문장들을 정리해 보았어요.

"생존과 글쓰기는 뒤라스에게 같은 말이었다."(p.21)
" 버지니아 울프는 글쓰기에 모든 것을 건 작가였다."(p.41)
"그야말로 글쓰기는 기쁨이자 고통이었다."(p.46)
"어떤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프리다는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했다."(p.65)
"그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여자가 아니라 삶의 전부를 글쓰기에 걸었던 여성 시인이었다."(p.85)
"구원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지금 쓰고 읽는 것에 존재한다."(p.94)
"나는 글을 쓴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p.118)

어떤가요? 결연하고, 강렬하다 못해 강력하고, '이래서 대문호구나' 싶은 문장들이 아닌가요? 읽기와 쓰기가 생존, 삶의 전부, 모든 것, 고통이자 기쁨 정도는 되어야 이 사람들처럼 쓸 수 있구나 싶어요. 책을 읽을 때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 당연하게도 제 삶과 맞닿아 읽는 일을 멈춥니다. 제가 생각보다 낄 때와 빠질 때를 잘 구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감히 어떻게 제 삶을 그 옆에 가져다 놓겠어요.


남편은 『사장학개론』을 쓰신 김승호 회장님을 참 좋아합니다. 요즘 차로 이동할 때면 그분의 강의를 숏츠로 짧게 듣는다고 해요. 그리고 강의 내용 중 감명받은 부분들을 저에게 들려줍니다. 가끔 너무 피곤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유익한 내용이라 저에게도 새로운 통찰을 주곤 해요.

얼마 전에도 강의에서 들었다면서 남편이 저에게 질문을 했어요. "매출 3배 늘리기를 목표로 잡는 것과 매출 30배 늘리기를 목표로 잡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제 대답은 간단했어요. "30배는 너무 현실성이 없지 않나?" 제가 다행히 만족스러운 답을 한 것 같더군요. 신이 난 남편이 이렇게 말했어요.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30배 매출 상승을 목표로 잡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 접근 방법부터 달라진데. 새로운 시야로 볼 수 있는 거지."


현주언니, 정말 뜬금없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언니의 편지를 읽고, 글 쓰는 여자들의 삶이 담긴 책을 읽으며 남편과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손원평이 아니었다는, 박완서도 못되겠다는 언니의 마음을 백분 이해했어요. 제 마음과도 같으니까요. 앞서 적은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같은 마음이었고요. 언니와 저는 명백하게 손원평이 아니고 박완서도 못 됩니다. 그런데 목표점을 '넥스트 손원평'이나 '차세대 박완서' 같은 거창하고 입 밖으로 내기 창피한 말들로 세울 수는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노트북 앞에 앉은 우리의 마음에만 있는 목표니까요. 늘 에너지 고갈 상태로 일하고 육아를 하는 우리일지라도, 그들처럼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지금부터라도 '읽고 쓰는 삶'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언니는 편지 앞머리에 저와 아이의 안녕을 물어보셨는데, 저는 제 할 말이 다 끝난 후에야 답합니다. 오늘 저와 아이는 안녕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맛있는 것도 든든히 먹었고, 신나게 놀았고, 잠도 잘 잤어요. 아이를 재운 후 늦은 새벽까지 읽고 쓴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더 잠자리에 들기가 싫네요. 그래도 다가오는 오늘을 위해 자야겠죠? 밝아오는 토요일, 언니와 두 아이는 어떤 계획이 있으실까 궁금해요. 저는 물려받은 『겨울왕국』 동화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겨울왕국 뮤지컬을 예매해 두었습니다. 뮤지컬을 본 후에는 엄마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에요. 언니와 마찬가지로 저 또한 자주 엄마 집에 가고, 엄마의 손에 아이를 맡깁니다. 엄마가 없었다면 저는 일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엄마의 삶에서의 구원은 또 엄마"라는 언니의 문장이 내내 잊히지 않더라고요.


언니의 편지를 읽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이 되었고 더 좋았습니다. 부디 제가 느낀 힘을 언니도 느끼기를 바라며, 그 힘으로 아이들과 자신을 더 돌볼 수 있으시길 바라며 여기서 줄입니다.


2025년 8월 16일,

지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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