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관계는 대체로 애증이다. 애가 넘치지만 시시때때로 증이 치고 들어오는 사이, 어떨 땐 엄마의 ‘엄’ 자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으면서도 전화하다 화딱지가 나서 퉁명스럽게 끊어버리고 마는 그런.
서울서 돈 번다고, 바쁘다고 유세 떠는 나와 엄마의 통화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딸, 바쁘제. 그냥 했다. 밸일 음나?” “어, 별일 음따.” “엄마는?” “별일 엄찌. 밥 잘 챙기 묵고 단디 댕기라. 운전 조심하고.” “알겠데이.”
잘 아프지 않는 나인데 아플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가끔씩 아프곤 한다. 쉴 수 있는 주말이라거나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다거나 할 때다. 어떤 날엔 부산에 내려가서 엄마와 함께 손잡고 병원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불혹의 딸을 두고 “우리 애가…”라며 내 목소리를 대변하는 엄마 옆에서 가끔 부끄럽기도 했지만 엄마만 졸졸 쫓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부산에서만큼은 내비도 필요 없는 인간 내비게이터다.
영화 ‘3일의 휴가’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 복자(김해숙 배우)는 딸 진주(신민아 배우)가 본인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갖은 고생을 하며 딸을 공부시켰다. 딸은 돈 벌러 떠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상처를 가슴에 품은 채 오기로 엄마가 원하는 공부를 한 뒤 교수가 되었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이미 뒤틀릴 대로 뒤틀렸다. 그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떠나보내버리고 만다. 엄마를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던 중 죽은 엄마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3일간 휴가를 와서 딸과 오해를 풀고 다시금 떠나는 이야기. 그냥 눈물이 콸콸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1년에 몇 번 볼까말까하고 전화는 늘 퉁명스럽게 끊어버리고 마는 딸이지만 엄마의 부재를 상상하기만 해도 눈물이 글썽인다. 내 존재를 무턱대고 믿어주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은 마음. 엄마에 관한 한 나는 늘 무장해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