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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y 18. 2020

부끄러운 정수리(feat.새치머리)

뿌리염색이 뭐라고...

어릴 적부터 새치머리가 많았다.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언니도 그랬고, 10살 차이가 나는 20대 후반의 남동생도 새치머리에 시달리고 있다. 엄마도 30대부터 염색을 시작했다고 하니 이건 누가 뭐래도 유전. 학창 시절에 새치머리가 한두 가닥씩 올라와 뽑을 만했다. 나름대로 뽑는 쾌감도 있었다. 주변 친구들까지 달려들어 내 머리를 헤짚으며 새치머리를 속속 골라냈다. 새치머리가 한 가닥, 두 가닥씩 올라와 솎아낼 수 있었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머리인 수준이 됐다. 내 나이 서른여덟 시집도 안 갔는데 염색을 안 하면 머리는 거의 백발이다. 


영화 <소공녀>의 이솜 배우처럼 느낌 있는 새치머리도 아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처럼 멋지게 흰머리를 let it be 하고 싶지만 시집도 안 간 서른여덟 여자가 흰머리를 둘 자신감은 아직 없다. 새집 안 간 거랑 새치머리랑 뭔 상관이냐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그냥 뭐 그렇다. 


이젠 친구들도 하나둘 새치머리가 나기 시작한다면 걱정하기 시작한다. 유전 때문이라고 우길 수 있는 새치머리가 아닌 노화의 흔적인 흰머리라 해도 무색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놈의 머리카락 성장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염색한 지 일주일만 지나도 희끗희끗 올라오고, 빛을 받으면 반짝인다. 어휴~ 1주 차 땐 나만 신경 쓰이는 정도, 아는 사람만 눈치채는 정도다. 새치머리도 더한 곳이 있고, 덜한 곳이 있는데 2주 차에 접어들면 덜한 곳으로 가르마를 바꾼다. 그러면 또 한 일주일 버틸 수 있다. 3주 차에 접어들면 제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좀 있어 보이는 말로 '헤어 쿠션'이고 다른 말로는 흑채 정도 되겠다. 다행인 건 이런 제품들이 날이 갈수록 발전한다는 점. 처음엔 다 써가는 마스카라를 가르마에 칠했는데 손이며 옷이며 잘 묻어나고 머리는 떡지기 일쑤. 지금은 분 바르듯 헤어 쿠션을 흰머리가 가득한 가르마를 중심으로 머리카락에 톡톡 바른다. 머리에 헤어 쿠션을 바른 걸 잊고 머리를 만지면 손에 묻어나는 건 여전하지만 유분기가 적어졌고 커버력도 좋아졌다. 다행인 건 내 머리 새치는 더 하얘지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기술은 더 발전할 테니.


4주 차에 접어들기 전에 염색을 하는 게 좋은데 한 주라도 늦춰보고자 존버하다 보면 한주 내내 의기소침해진다. 정수리 가르마를 헤어 쿠션으로 커버하기엔 약간의 한계 아닌 한계가 느껴진다. 귀 옆도 하얘지고 이쪽 가르마고 저쪽 가르마고 허옇긴 마찬가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감춰둔 내 비밀이 까발려질까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머리를 한 묶음이나 반 묶음으로 묶는 걸 좋아하는 데 새치머리가 생긴 후 머리 묶는 것도 신경 쓰인다. 묶음 머리 사이로 새치머리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좋아하던 반 묶음 머리도 새치머리 덕분에 안녕.


값싼 염색약으로 셀프 염색을 한 달이면 내내 쪼글아들었다. 당장 정수리와 귀 옆머리를 검은색으로 칠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새치머리인 사실이 들통날 게 뻔하다. 셀프 염색을 꼼꼼히 한다 해도 머리 뒤 가르마까지 챙기질 못할 테니 부분부분 듬성듬성 흰머리가 남아 있을 테니까. 누가 와서 '이놈, 새치머리구나'하진 않겠지만 뭔가 제대로 비밀을 숨기지 못한 찝찜함이 나를 괴롭힌다.

  

그렇다고 3~4주에 한 번은 뿌리 염색을 해줘야 하는데 매번 미용실을 찾을 수도 없다. 뿌리 염색이라고 해도 일반 미용실에서는 가격이 수만 원, 비싼덴 십수만 원씩 한다. 요즘은 염색방(염색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곳곳에 문을 열었다. 염색방이 공식용어인진 모르겠지만 포털사이트에 염색방을 검색하면 다양한 브랜드의 염색방이 나온다. 짧은 머리의 경우 싸게는 1만 5000원 긴 머리는 3만 원 내외다. 영양이나 커트는 포함하지 않은 가격이다. 일반 미용실보다는 가성비가 좋아 종종 이용한다.


나는 염색하는데 2-1 법칙을 뒀다. 셀프 염색 2번 후 미용실 또는 염색방을 찾는 식이다. 1-1 법칙도 유효하다. 염색하는데 법칙까지 둘 일인가 싶지만 이 정도면 합리적이라고 나 자신과 타협했다. 새치머리가 뭐라고, 염색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할 말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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