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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n 17. 2020

골프가 뭐길래!

누군가는 그랬단다. 


골프는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데 유용한 수단 
이라고

실제로 골프는 대체로 수단으로 시작한다. 인간관계를 위한 수단이 제일 크다. ‘와, 진짜 골프 재미있어 보이는데 한 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사람은 크게 못 봤다. 예를 들면 '어릴 때 슬램덩크를 너무 좋아해서 덩크슟 한 번 넣어보고 싶어서 농구를 배운다' 거나, '어릴 때부터 하도 맞고 다녀서 좀 때려 보려고(?) 복싱을 배운다'거나, '발레복 입고 싶어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라거나, '물에 빠져도 살아남으려고 수영을 배운다'거나, '바다를 가르면서 멋지게 서핑하는 모습이 인생의 버킷리스트'라거나 가장 흔하게는 '살 빼려고', '체력을 키우려고' 운동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골프라는 종목은 '운동이 될 것 같아서 살 빼려고', '골프복이 너무 예뻐 입어 보고 싶어서', '싱글 골퍼가 되고 싶어서'라고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없다고 하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물다로 순화했다). 

 

주변에도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니 상사가 ‘너도 이제 골프 좀 시작해’라고 해서 하게 됐다 스토리가 제일 흔하다.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자들이 너도나도 골프장에서 사업도 하고 비즈니스(사업과 같은 말이지만 왠지 다른 늬앙스)도 하고 비리도 저지르고 불륜도 일어나고 한다(?)는 뭐 그런 공간. 


나도 그랬다. 나 역시 골프채를 잡은 건 선배들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내가 다닌 직장에는 남자 선배들이 많았는데 대체로 30대면 골프를 시작했고 40대면 골프에 환장해 있다. 진짜 그야말로 환장해 있다. 대화 주제라고는 오로지 골프, 정말이지 앉으나 서나 골프 이야기밖에 안 한다. 지난 주말에 라운딩 간 이야기, 골프장비 이야기, 골프선수 이야기, 골프 관련 에피소드, 이를 테면 ‘내가 말이야 지난가을에 땡땡cc에서 홀인원을 했는데 말이야’ 하는 등 끝도 없다.


그리고 앉았다 하면 골프채널만 본다. jtbc골프, sbs골프 채널에 고정이다. 대체로 골프 경기를 보고, 골프레슨 영상도 주야장천 본다. 요즘은 유튜브 채널까지 더해졌다. 누구 채널이 볼만하네, 누구 스윙이 명품이네 등 품평은 기본이다. 


가장 꼴불견인 건 어디에서나 스윙 연습을 하는 모습이다. 술 먹다 담배 피우면서 술 집 유리창에 비칠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가 대표적이다. 가만히 있지 않고 엉덩이를 뺀 채 팔을 휘두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 이거 정말 꼴 보기 싫었다(미래의 어느 날 내가 그렇고 있을 거라곤 상상 못 했다).


사회생활 5년 차쯤 됐으려나. 어느 날부터 선배들이 골프를 시작하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채도 줄게, 머리도 올려 줄게(이 말 참 별로지만 처음으로 골프 라운딩에 나가는 걸 머리 올린다고 하는데 대명사처럼 쓰인다), 너는 키도 크고 힘도 좋아서 잘할 거야’라며 온갖 감언이설을 속삭였다.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인생에서 골프를 칠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골프=비싼 운동’, ‘골프=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이 하는 돈XX’이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가득했다. 국회의원이며 공직에 있는 사람이 부적절한 시기, 예를 들면 지역구에서 사건사고가 났을 때 하필이면 골프장에 갔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해명하는 모습도 이상하게 보였다. 골프가 뭐길래, 저렇게까지 치고 싶어 안달이 나 꼭 이런 시점에 갔어야 했느냐(골프는 본인상 외에는 무조건 취소 불가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떠돈다) 말이다. 드라마며 영화에서 온갖 비리가 이뤄지는 온상이 골프장인 점도 한몫했다. 


그런 고정관념을 깰 만한 대단한 사건 같은 건 없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던 어느 날 무료한 마음에 ‘골프가 대체 뭐길래. 까지껏 한 번 해보지 뭐’하며 선배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척했다. 수영, 요가, 필라테스, 자전거, 크로스핏, 발레, 보드, 실내 클라이밍, 스쿠버다이빙, 복싱, 서핑, 러닝 등 다 해봤으니(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건 없지만) 까지껏 골프도 한 번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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