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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n 18. 2020

삶에 골프가 들어온다는 것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온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 말처럼 누군가의 일상에 하나의 운동이 그 중심에 들어온다는 것 역시 생각보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일상을 이루는 시간표가 달라지고 쇼핑리스트가 달라지고 챙겨보는 콘텐츠며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달라지고 몸의 자세가 달라지고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꾸준히 하는 것 이상의 방법이 없다. 골프 역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려면 짧게라도 매일 갈고닦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물론 알지만 실천이 어렵다). 가까우면 한 번이라도 더 가겠지 싶어 회사 근처에 골프 연습이 가능한 곳으로 헬스장을 등록했다. 근무 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게라도 채를 휘두르다 오거나, 퇴근 후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잠시라도 들르기 위해 애쓴다. 하루를 이루는 24시간 중 최소한 30분에서 1시간은 골프에 쏟는 셈이다. 더불어 동선도, 먹는 것도 변화한다. 골프연습장 근처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하는 횟수가 늘어간다. 


쇼핑리스트의 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어느 날부터 내 PC와 스마트폰 화면이 골프 관련 용품 광고판으로 뒤덮인다. 내가 골프화며 골프웨어며 골프용품을 검색한 탓이다. 내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너 이거 필요하잖아’, ‘너 이거 사고 싶잖아’하며 쇼핑을 자극한다. 골프 초반엔 주로 골프화며 골프웨어에 탐닉한다. 평소 입어본 적 없는 화려한 컬러와 짧은 치마에도 눈길이 간다(물론 나는 언제나 그렇듯 검은색, 흰색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왜 골프장에 빨간바지, 체크바지, 줄무니 바지의 아저씨들이 많았는지 십분 이해 간다. 매일 입는 똑같은 검, 회, 남색 수준의 옷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니까. 


골프채를 감싸는 각종 골프용품들, 이것도 참 요물이다. 채끼리 부딪히면 상할 수 있기에 채마다 각각의 옷을 입히기 마련인데, 귀여운 것 천지다. 골프웨어에 탐닉하던 시절을 지나 골프채에 빠지게 되면 좀 골치 아프다. 워낙 고가인 탓이다. 어떤 취미이건 ‘장비 빨’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듯이 골프 역시 이런 수순을 밟게 된다. 나는 다만 어느 순간 몸 대신 채 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골프채를 바꾸고 싶다고 신호다.  


생전 본 적 없던 골프뉴스를 챙겨 보게 된다. 덩달아 다양한 골프선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박세리, 미쉘위, 박인비 선수처럼 전 국민이 다 아는 정도의 선수 이름만 아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골프 스윙만 보고도 선수 이름을 맞추기에 이른다(는 건 약간 뻥). 골프채널 번호를 외우게 되고(다행히 2개밖에 없어서) 유튜브 채널로 골프 레슨이며 좋아하는 선수의 브이로그 등도 챙겨 본다. 일상을 이루는 큰 축이 바뀌는 셈이다. 


누군가의 삶에 하나의 운동이 들어온다는 건 그야말로 삶이 뒤바뀌는 엄청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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