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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l 07. 2020

골프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똑딱이를 하다 하프스윙, 풀스윙을 배운 뒤 공을 처음으로 제대로, 있는 힘껏 치는 날이 드디어 왔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맞을 리가 없는데, 그러다 어쩌다 한 번쯤 공이 ‘찰싹’ 하고 잘 맞을 때가 있다. 


'와, 기분 째진다.' 


정규 교과과정을 밟고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발야구며 피구며 족구며 농구며 배구며 탁구 등 구기종목을 조금씩은 맛봤지만 피구를 하며 친구 등에 공이 퍽 하고 잘 맞을 때, 축구를 하며 공이 골대를 가를 때, 농구를 하며 공이 골대를 슉 하고 빠져나올 때, 배구를 하며 찰지게 스파이크했을 때 맛볼 수 있는 그런 느낌과는 다른 뭔가 ‘찰진’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짝인지 쩍인지 찰싹인지 철썩인지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암튼 뭐가 조금은 특별하다. 쾌하다. 유쾌, 상쾌, 통쾌하다. 


사실 골프는 ‘짝’ 하고 공과 채가 잘 들어맞는, 그 기분 째지는 순간 가장 포텐이 터진다. 물론 그린 위에서 홀 안에 공이 ‘쏙’ 하고 들어가서 나는 ‘땡그랑’ 소리는 말해 무엇하랴. 그 조그맣고 멈춰 있는 공을 멀리 보내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찰싹하고 맞는 순간 느끼게 된다.

 

‘아, 사랑에 빠지겠구나.’ 


그것도 짝사랑에 말이다. 그저 가만히 놓여있는 공을 놓고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짝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다. 짝 하고 맞는 순간 괜한 자신감도 생긴다. ‘이제 됐다’는 섣부른 맘이다. 상대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혼자서 저만치 앞서 나간다. 겨우 다음번 데이트 약속을 잡았을 뿐인데 이미 혼자 자녀계획까지 세우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다.  123개를 치다가 117개를 치는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뿐인데, 이미 혼자서 85개를 치는 정도로 설렌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어찌하면 저 스코어를 가질 수 있을까 하면서. 공을 놓고 혼자 삐치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한다. 손에 땀이 나서 문제인지 손에 땀을 닦아 보기도 하고 채가 문제인지 채를 바꿔보기도 한다. 사실은 내 마음의 문제인걸. 세게 치고 싶고 멀리 치고 싶고 잘 치고 싶은 마음이 과도한 탓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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