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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l 14. 2020

공님, 그저 무사히 앞으로만 가주소서

느닷없이 첫 라운딩

경기 룰을 몰랐고, 스코어도 셀 줄 몰랐다. ‘골프는 정규 타수보다 적게 치는 게 유리하다’, ‘버디라는 게 좋은 거다(?)’ 정도로만 알았다. 골프는 이런 운동이며, 골프 스코어는 이렇게 매겨지며, 골프를 칠 때는 이런저런 매너를 지켜야 한다라는 식의 상식과 개념과 매너 등을 아무것도 모른 채 라운딩을 나갔다.


첫 라운딩에서부터 ‘너무 즐거웠어요’라는 사람을 못 보긴 했지만 이제 겨우 1개 홀을 쳤는데 ‘아,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18개 홀을 돈다고 했다.


‘이 짓을 앞으로 17번이나 더 해야 한다니!’


골프는 18개 홀로 이뤄진다. 쉽게 말해 18개의 구멍, 즉 홀(Hole)이 있다. 18번 공을 홀 안에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18개 홀은 파3, 파4, 파5 홀로 구성된다. 어떤 홀은 3번 만에 어떤 홀은 4번 만에, 어떤 홀은 5번 만에 홀에 공을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해진 만큼 공을 넣으면 파(Par)라고 한다. 5번 만에 홀인을 해야 하는데 더 적은 타수로 홀인하면 언더파, 더 많은 타수로 치면 오버파가 된다. 일반적인 골프장에선 18개 홀 중 파3홀 4개, 파5 홀 4개, 파4홀 10개가 있다. 이를 다 합치면 72가 나온다.  


어떤 홀은 100미터 내외로 좀 짧기도 하고 어떤 홀은 300~400미터로 무척 길었다. 짧은 홀은 공을 3번 만에 넣어야 하는 파3홀이다.  대게는 파4홀이었는데 4번 만에 공을 넣어야 한다. 스코어는 이미 아웃오브안중이고, 그냥 같이 플레이하는 동반자와 뒤팀, 캐디에게 민폐끼지치 않게 뛰어다니기 바빴다. 초보에게 파5 홀은 정말 말도 못 하게 길었다. 다음 홀이 파5홀이라고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공님, 그저 무사히 앞으로만 가주소서.’


공이 그저 떠서 앞으로만 가 주면 좋겠다. 채를 쓰지 않고 그냥 공을 들어 앞으로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가만히 있는 공을 채를 휘둘러 치면 되는데 허공에 대고 휘두르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겨우 맞았다 싶은데 겨우 앞으로 몇 센티(몇 미터 아니고) 간다. 어쩌다 맞으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기 일쑤다. 나는 분명 그냥 똑바로 앞으로 보내고 싶을 뿐인데 가만히 있는 공을 앞으로 보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몸엔 식은땀이 흐르고 어깨는 경직됐다. 앞팀, 뒤팀, 동반자. 캐디에게 민폐일까 봐 7번 아이언 하나를 들고 주야장천 뛰어다녔다. 18홀을 그렇게 뛰고 나니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처음으로 라운딩을 나간 날, 나는 셀 수 없는(Uncountable) 경기를 치렀다. 아마 모든 홀에서 더블파 이상을 했다. 파의 배가 더블파(double par)인데 4번 만에 홀컵에 공을 넣어야 하는 홀인데 8번 이상 친 경우다. 우리말로 ‘양파’라고도 한다. 이땐 더 이상 라운드 하지 않고 홀아웃(Hole Out)한다. 그 이상은 셈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산상 72개의 2배인 144개 이상을 칠 수도 없다.


억겁의 시간이 흐른 듯했다. 더 이상은 골프를 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골프의 골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나지 않는 첫 라운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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