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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l 09. 2020

아파트를 욕망하다

저는요. 아파트에 한 번도 안 살아봤어요. 나름대로 할머니, 할아버지대부터 살아온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어요. 아파트에 안 살아도 나름 자부심이 있었어요. 뭐랄까, 가풍 있는 집안사람이라는 느낌? 뭔지 아시죠? 압구정에는 신생 부자가 살지만 성북동이나 평창동에는 대대로 부자가 사는 느낌 같은 거. 그렇다고 제가 성북동이나 평창동에 산 건 아니지만.


외국에 무슨 유명한 건축가였나? 우리나라를 보고 그랬다잖아요.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그 말이 전 왠지 좀 쪽팔리더라고요. 전통을 모르는 국민,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듯한 느낌, 뭔가 좀 없어 보인달까. 유럽여행 가보면 막 엄청 유서 깊어 보이는 건물들 너무 멋있잖아요. 냉난방도 잘 안 되고, 엄청 낡고, 엘리베이터도 느리거나 없고. 뭐, 그래도 그냥 있어 보이는 느낌적인 느낌. 쭉 계속 사는 거 아니고,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객이니까 불편함을 덜 느껴서일 수도 있겠지만요. 


근데 사실 아파트가 한국의 상징이긴 한 것 같아요. 서울 무슨무슨 대교 건널 때면 무수히 펼쳐지는 아파트 불빛. 왜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은 없는가에 대한 깊은 심연. 얼마 전에 친구가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집들이를 했어요. 헌 아파트 아니고 '쌔'아파트! 막 블라인드도 창문에 들어가 있고 공기청정기도 천장에 붙어있더라고요. 에어컨은 뭐 기본이죠. 수납할 공간도 진짜 많고요. 나갈 때 집 안에서 미리 엘리베이터로 누를 수 있고, 빨래걸이도 천장에 달려있어서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어서 집안에 너저분하게 빨래 널 일도 없대요. 또 뭐 있더라. 아, 오븐도 있는데 에어프라이어도 따로 필요가 없대요. 그래도 뭐, 요리는 안 해주더라고요. 그냥 치킨 시켜먹었어요.  


그래서 저도요,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너무너무요. 제가 이제 30대 중반이거든요. 친구들은 하나둘 아파트 장만해서 이사하는데 나는 아직도 원룸이니 오피스텔이니 빌라니 이렇게 사는 게 쪽팔려서 미치겠어요. 쪽팔리는 수준이 아니라 뭐랄까,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느낌? 배 아픈 기분은 이미 넘어섰어요. 친구들이 막 집이 1년 만에 3억이 올랐네, 청약받은 후에 두 배가 됐네 이러는데 처음엔 고고한 척하면서 ‘어휴, 졸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했거든요? 갭투자라는게 있다기에 그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며, 집은 사는(buy)게 아니라 사는(live)라는 어디서 주어들은 썰을 풀었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병신'이었어요. 안 먹고 안 입으면서 100만 원씩 적금 들어서 1년에 1200만 원, 그렇게 5년을 모아야 원금 6000만 원이에요. 요즘 이자 진짜 얼마 안 되는 거 아시죠. 이자 진짜 쬐금 주면서 세금은 또 15.4%나 떼 가요. 이자를 소득이라고 보고 이자소득세라는 세금을 매긴다네요. 이자소득세 14%에 지방세 1.4%까지. 아니 이자 겨우 1~2% 주면서 세금은 뭐 이리 많이 떼 간데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찌나 빈정이 상하는지.  


아파트를 사고 싶어요. 너무너무요. 근데 이게 뭐 사고 싶다고 몇 개 둘러본 뒤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비싸긴 또 오지게 비싸고요. 진짜 큰 맘먹고 대출을 막 다 땡기고, 있는 돈 없는 돈 요즘 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영끌)서 한다고 해도 서울은 커녕 경기도 어디쯤에 20년 넘은 아파트도 못사게 됐어요. 


요즘 부동산 앱이 워낙 많고 잘 돼 있잖아요. 진짜 핸드폰 들여다볼 때마다 그 앱들 줄줄이 켜 놓고 집을 막 봐요. 계속 보다 보면 돈도 없으면서 ‘억’이라는 단위가 무감각해지더라고요. 1억도 제대로 없으면서 ‘7억 정도면 괜찮네’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그 와중에 한 3억 정도? 하는 아파트가 있길래 한 번 가봤어요. 5호선 끝자락에 있는 동네예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동서남북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겠는 동네. 가봤더니, 와~ 요즘도 이런 아파트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천장에 달린 빨래건조대를 기대하고 있는데 제게 너무 가혹했어요. 좁고, 낡고. 이건 뭐 빨래를 이고 지고 살아야겠더라고요. 


근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나도 아파트 사고 싶어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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