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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r 02. 2021

남해가서 멸치쌈밥만 먹지마요, 알고보면 이게 더 맛있음

남해여행 Day2

8시 50분에 알람을 맞췄다. 조식을 먹어야 하니까. 미리 본 리뷰에 따르면 이곳 조식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알람 소리에 번쩍 눈을 뜬 뒤 눈곱만 떼고 아지트로 향했다. 기대했던 조식이 준비되어 있다. 주스를 주시기에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나무 도시락통이 준비되어 있는데 안에는 멸치를 넣은 주먹밥 4알과 계란말이, 해시포테이토, 바나나 3분의 1쪽과 피클이 들어 있다. 맑은 미소장국과 함께. 사장님이 게스트하우스 관리를 전담하지만 이 조식 도시락은 아내께서 만드신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맛이 대단하진 않았다. 나쁘지도 않았다. 만든 이의 정성을 느껴가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야무지게 다 먹고 설거지를 했다.

나는 이번 여행 동안 애써 버스시간을 신경 써 가며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관광지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남해에 온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를 더 보태자면 2월 말이라 아직 꽃이 피어있지도 않았고(꽃망울이 조금씩 움을 틔우고 있었다), 날씨는 아직 추웠고, 때마침 비와 강풍 소식도 있었다.


다만 좀 아쉬운 건 근처에 있는 지족마을의 책방에는 가보고 싶었는데 망설여졌다. 고민하던 차에 게하에서 픽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내분이 지족에서 샵을 운영하는데 여는 시간과 마감하는 시간에 맞추면 된다는 것.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나는 숙박을 하루 더 연장했다. 단지 1층 방의 짐을 싸서 2층으로 옮기면 된다. 3일 동안 같은 방에서 지내면 지겨울 뻔했는데 방을 옮길 수 있어 오히려 더 좋았다.


아침을 먹고 어제 보다 만 책을 보며 오전 시간을 보내다 나갈 채비를 했다. 자리를 잡고 글을 좀 써볼 요량으로 노트북을 챙겼다. 첫 번째 목적지는 빵집이다. 독일마을에서 내려다보니 커다란 글씨가 눈에 띄어 점찍어둔 곳이다. 비싸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과연 정말 비쌌다. 만원 짜리 빵이 절반 이상이다. 물론 빵이라고 만원에 팔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어딜 여행가도 동네 유명한 빵집 순례를 빼먹지 않는 빵순이 입장에서도 섣불리 손이 가진 않았다.  

비싼 가격에 흠칫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2019 최고의 빵'이라고 소개해 놓은 크림치즈 호두 브로첸(독일식 미니 바게트란다)이란 메뉴를 골랐다. 실은 3000원이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다. 온통 만 원짜리 빵만 있었다면 그냥 나왔을 터다. 아직 내겐 만 원짜리 빵을 먹을 베포는 없었다.


사실 빵을 먹기보다 그냥 사서 가기에 적합한 공간이었지만 4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먹으며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보냈다. 쓰고자 했던 글의 서문 정도를 끄적였다. 1시간 동안 끊임없이 손님이 들락였다. 목소리 크고 화통하신 주인장은 끊임없이 자신이 만든 빵을 '세계 최고의 빵'이라며 진열된 빵을 추켜세웠다. 본인만의 영업방식인 듯했다. 그 목소리가 거슬릴 때쯤 짐을 싸서 나왔다.    

빵 배를 다소 부족하게 채운 탓에 밥 배를 채워야 했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있었다. 빵집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식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양고기 집인데 돈가스가 맛있다, 의외로 파스타 맛집이라는 평이 눈에 띄었다. 남해에 와서 본격적으로 양고기를 먹고 싶진 않았고, 요즘 빠져있는 라구소스 파스타를 주문했다. 생맥주가 있기에 당연히 맥주도 한 잔 곁들였지. 결론은 무척 만족스러웠고 내일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면 다시 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일 다시 온다면 남해 시금치 까르보나라를 시키리라.    

램 로제 라구 파스타(1만 7000원)와 독일 생맥주 마이셀(300ml 6000원). 찬으로 나온 와사비 김치가 인상적이다.

다시금 걸어서 독일마을로 갔다. 어젯밤에는 살짝 맛만 봤으니 오늘은 좀 찬찬히 둘러볼 참이다. 그런데 이날따라 남해답지 않게 쌩쌩 부는 바람이 말썽이다. 기념품 숍 등을 둘러보며 길을 올라갔다. 모든 상점에서 독일소시지와 독일맥주를 팔았다. 더불어 호두까기인형 기념품도. 독일마을 다웠다.


거리 양 옆으로는 화려한 간판의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길을 오르다 멀리 남해 바다뷰가 기대되는 카페를 발견해 잠시 자리를 잡았다. 이번 여행 중 마무리하고 싶은 e북을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2시간쯤 흘렀을까. 마감시간이 있는 원예예술촌과 남해 파독전시관이 퍼뜩 떠올랐다. 부지런히 올랐는데 파독마을전시관(입장료 1000원) 입장시간(관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은 오후 5시 30분 마감)이 지나있었다. 원예예술촌은 입장료(5000원)가 있고 꽃도 피지 않았을 2월인 데다 바람도 워낙 부는 날씨 때문에 볼 생각이 없었지만, 파독마을전시관을 놓친 건 아쉬워라.

남해파독전시관을 관람하려면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해야 한다.
원예예술촌은 16개국의 집과 정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은 안내도로 대신했는데 짧게 알아보자면 독일마을의 유래는 이렇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76달러에 불과하던 1960년 당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 등으로 파견된 이들이 있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라 칭한다. 이들은 어렵던 시절 먼 타국에서 돈을 벌어 고국에 송금하며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도왔다.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루게 됐고, 이들이 고국에 돌아와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남해에 마을을 만들었다. 10만m2(약 3만평) 정도 되는 부지에 독일에서 직접 건축 재료를 수입해 독일식 주택을 짓고, 독일을 알리는 공간도 마련했다. 2013년 33동의 주택이 완공됐고, 현재에 이르러 주거지 또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 업소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파독전시관과 원예예술촌은 밖에서 둘러본 걸로 대신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저녁을 챙기고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저녁 메뉴는 멸치쌈밥 대신 멸치회덮밥이다. 멸치쌈밥은 2인분만 된다고 했다. 까지껏 2인분쯤 먹어 주지 하는 오기를 부릴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멸치회를 선호하지도 않거니와 멸치는 5월이 제철이란다. 겨울엔 냉동멸치를 쓴다고 했기 때문이다.  

(좌)마치 야채깨덮밥처럼 보이지만 멸치회덮밥(1만2000원) (우)독일마을에수 구입한 트레비어 맥주. 알고보니 울산에 양조장이 있다. 기대이상의 맛.

사진으로는 채소'깨'덮밥처럼 보이지만 멸치회덮밥이다. 옆자리 멸치쌈밥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멸치회는 이 만하면 되었다. 오히려 반찬으로 나온 시금치 나물이 무척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역시 남해시금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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