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살다가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살았던 보금자리는 방배동, 지하철역으로 보자면 내방역이었다. ‘뭔 동네 이름이 내방이람’ 했다. “느그집 어디고”, “내방(우리 집) 내방이다(인토네이션 주의)” 같은 같잖은 아재유머가 가능했던 동네.
뭐든 어색하고 낯설지만 신나고 열정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지방러치곤 이사를 많이 하진 않았다. 실은 전세살이가 좋았다. 진짜 살고 싶은 동네와 주거환경 등에 맞는 집을 찾고 싶었고, 그걸 찾느라 이 동네 저 동네 전세살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를 살아서 좋기도 했다. 동네가 집이 지겨워지면 이사를 결심하고 다른 동네를 걸었다. 꼭 강남이거나 아파트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좀 더 다양한 곳에서 살다 보면 ‘아, 나는 알고 보니 아파트에 적합한 사람이었구나’ 혹은 집은 좁아도 직주근접이 중요한 사람인지, 큰 평수를 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겠지 싶었다.
서울에 올라와 언니 집에 얹혀살다, 월세살이를 하다가, 전세자금을 모아 전세로 살 수 있게 됐을 때 ‘아, 나 좀 대견하다’ 싶었고 얼마간 뭉클했다. 한 때는 자랑스러웠고, 밤이면 친구들 불러다 먹고 마시고 즐기던 소중하고 애틋한 내 집. 마포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뿌듯했던, 여의도(서여의도) 입성을 꿈을 꾸던 시절 간절히 원했던 보금자리. 무엇보다 부산을 떠나와 혼자 힘으로 마련한 첫 전셋집. 그냥 좋았다. ‘밤 깊은 마포종점’이 우리 집인걸.
그런 마포집이 부끄럽고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해진 기분은 뭐랄까, 무척 슬펐다. 무려 6년을 살았는데 6년 동안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 마포를 떠나야겠다 결심하고 6년 만에 또다시 좀 더 깨끗한 전셋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집을 ‘살(buy)’ 생각을 못한 건 여전히 어리석은 내 고정관념 때문이었을까.
영화 ‘집 이야기’에는 혼자 서울살이를 하며 신문사 편집기자로 일하는 은서가 주인공이다. 자신이 살던 집의 계약이 끝나면서 정착할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한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적당한(?) 집을 보면서도 ‘내가 원하는 집이 아니에요’라는 알 수 없는 말만을 하자 부동산 중개인도 ‘아가씨가 원하는 집은 내가 구해줄 수 없을 것 같다’며 포기한다.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고, 짐을 뺀 뒤 단기계약으로 작은 집에 들어가려다 아빠가 혼자 살고 있는 인천의 고향집에 잠시 머물게 된다. 이혼 후 혼자 사는 아빠는 여전히 창문도 없는 옛날식 집에서 예의 그 고집대로 살고 있다. 좁고 불편하고 창문도 없는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아빠가 답답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엄마는 이혼 후 재혼하며 제주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시집간 언니는 셋째 임신과 함께 이번에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와중에도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은 가장 친한 친구의 지하 자취방이다. ‘너 이러다 계속 지하에 산다. 이사 좀 가’라며 등 떠밀면서도 변함없이 그녀를 맞이해 주는 공간에서 그녀는 어쩌면 가장 따뜻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나 역시 마포집을 떠나기 위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선택지는 언젠가 꼭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던 한옥집(경복궁역 일대), 힙한 동네 망원동이나 성수동,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 연희동이나 한남동 정도. 바람은 바람일 뿐. 최소 방 2칸의 신축급의 집에 살고자 계획에도 없는 곳에 터를 잡았다가 2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은 무려 도보로 출퇴근하는 직주근접을 꿈(?)을 이뤘다.
다만 여전히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신세다. 그럼 어떠랴. 언젠가 ‘진짜 내 집이다’ 싶은 집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모른다. 집에 저당잡히지 않고 꾸려나가는 인생 또한 나쁘지만은 않다. 집 없는 자의 과도한 긍정회로일 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