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 부산이 지긋지긋했다. 집은 답답했고 부산이란 무대는 너무 좁아 보였다. 무작정, 무조건 부산을 떠나 서울로 도망치고팠다. 무엇이 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밥 벌어먹으며 터를 잡고 사는 것 자체가 꿈이기도 했다. 그만큼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게나 염원했던 서울살이는 즐거움이자 자부심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고달픔이기도 했다. 꿈꾸던 서울살이를 시작한 뒤 ‘집’이라기 보단 ‘방’에 터를 잡아 꾸역꾸역 살아내는 삶이 근사하기보단 대체로 애잔했다. 서울엔 나 같은 뜨내기들이 많았고, 그런 중에 그럴 때면 같은 지역 출신의 사람을 만나는 게 꽤 진한 동질감을 줬다. 익숙한 억양을 들으면 무척이나 반가웠고, 같은 ‘편’ 먹기를 했다. 이래서 지연, 학연이라는 게 생기나 보다 했다. 가족과 오랜 친구들과 물리적인 거리감을 두고 지내면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따뜻함과 그리움을 느끼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뜨내기들만의 끼리끼리 문화도 서울생활 연차가 쌓이면서 많이 희석되어 갔다. 가족을 이루어 단단히 뿌리내려 가기도 했고, 사회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또 다른 무리 짓기를 하기도 했고, 일찌감치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을 택하기도 했다.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의 배경은 부산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집을 떠나지 못한 K장녀 혜진, 작가를 꿈꾸며 서울로 떠났다가 상처를 입은 채 고향에 내려온 둘째 혜영,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댄서로 훨훨 날고픈 막내 혜주와 혼자서 세 자매를 혼자 키운 엄마 화자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우연히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변해가는 세 딸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로 떠나고 싶은 막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둘째,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첫째 모두에게서 내 모습이 비쳤다. 세 자매가 각자 겪고 있는 고충들은 오히려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이라서 잘 알 것 같지만 가족이라서 더 모르는 서로의 이야기들. 내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 같기도 했다.
산만디(산 꼭대기, 산고개를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 시절 티를 벗고 세련미를 더해가는 부산으로 향할 때마다 왠지 점점 더 낯설고 이젠 서울이 훨씬 더 익숙해졌지만, 부산으로 향할 때면 늘 설레고 떠날 때면 애틋하다. 명절이면 가야 하는, 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는 점도 괜한 부심이 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방러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서울살이가 견딜 수 없이 고달파 질 때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점. 이 사실이 꽤 든든하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오는, 이른바 출세하거나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뒤 금의환향하는 꿈을 꿨었지만 빈털털이면 어떠랴. 내 고향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