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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Oct 14. 2024

버리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우리는 매일매일 다양한 선택지 앞에 선다. 늦잠을 잤는데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따뜻한 커피를 마실까 아이스로 마실까,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을까 돈가스를 먹을까, 빨리 뛰어가서 저 엘리베이터를 탈까 그냥 다음 걸 탈까.


‘아, 그냥 이왕 늦은 거 버스를 타는 건데 괜히 택시비만 날리고 지각했네’, ‘먹기 편하려고 아이스로 주문했더니 오늘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네’, ‘원래 계획대로 순댓국을 먹는 건데 괜히 지나가다 괜히 돈가스가 맛있어 보여서 주문했더니 실패했네’. 일상 속 작은 선택들이지만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나의 오늘 하루를 완성한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때 재수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때 이사를 할 때 집을 샀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때 회사를 옮겼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우리는 늘 최선을 선택하고, 최악보단 차악을 취하고자 한다. 당시엔 최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후회가 일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쉬운 마음에 버린 패만 눈에 보이지만 사실 그만큼 얻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은 나영과 해성 나영은 12살이 되던 해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이제는 더 이상 나영이 아닌 노라다. 해성과 나영은 12살의 감성 딱 그대로 서로를 좋아한다. 너무 서툴어 툭하면 부스러질 만큼 어설픈 첫사랑. 한 친구가 이민을 간다는데 별 수 있나. 하물며 카카오톡도 없던 시절인 걸. 12년의 세월이 흘러 20대 초반의 그들은 SNS를 통해 서로를 찾고 스카이프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12년간 어떻게 지냈고, 무슨 공부를 하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연애라기엔 아쉽고 첫사랑과의 재회라기엔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중간한 사이. 그 관계로 서로를 그리워만 하다 뉴욕과 서울 간의 물리적인 거리, 시차, 각자의 시공간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에 부딪혀 차츰 멀어지다 다시 한번 끊어진다. 다시금 12년이 흘러 어느덧 30대 중반. 나영은 이미 누군가(아서)의 아내가 되었고, 해성이 드디어 뉴욕을 찾는다. 24년 만에 서로가 서로를 실제로 만나게 되는데…

본격 연애 이야기도 아니고, 둘이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애틋한 이야기도 한다. 그 흔한 키스신도 하나 없으니 자극적인 요소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다.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이 영화는 전생과 인연 등을 이야기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거나 우리는 어쩌면 전생의 인연이 이어져 현생에서 부부로 맺어졌을 수도 있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 틈에 현생을 그리다가 만약(if)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만약에 그때 뉴욕에 갔더라면’, ‘그때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면서 우연과 인연 등을 되짚는다.

영화 초반 이민을 떠나는 나영의 엄마에게 해성의 엄마가 묻는다. 왜 지금 가진 걸 다 버리고 이민을 가느냐고. 그때 나영의 엄마는 말한다. “버리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라고.

인생이란 각자 맞닥뜨린 현실에서 매일 각자의 기준대로 선택을 거쳐 주어진다. 우연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일은 전생처럼 까마득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선택이 아닌 내가 손 놓쳤거나 버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둘러싼 다양한 서사들을 완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덧. 영화 속에서 작가를 꿈꾸는 어린 나영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며 “한국 사람들은 노벨문학상 못 타”라고 말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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