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갓집에 갔던 게 언제였는지, 누구의 장례식장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그 분위기만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뭘 입고 가야 하나, 양말도 검은색을 신어야 하나, 조의금을 얼마를 해야 하다, 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애써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나, 절을 해야 하나, 묵념은 얼마나 해야 하나 등 걱정이 많았다. 친구 둘셋과 어울리지도 않는 검은색 정장바지를 꺼내 입고 쭈뼛쭈뼛 절을 했는데 상주는 안 우는데 오히려 나와 친구들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조의 후 나오면 밥을 먹고 가라며 자리를 안내해 주는데, 이 밥을 먹고 나와도 되는 건가 싶지만, 밥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게 오히려 예의라고 해서 밥상을 받아 밥을 먹는데 그 와중에 밥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지. 한 그릇 싹싹 비우니 알아서 반찬과 수육 등을 한 번 더 리필해 주셔서 황송하게 그것도 다 먹고, 괜스레 죄송한 마음에 내 자리와 옆 자리를 정리하는 시늉을 하다가 나왔다.
언제부턴가 경사보다 조사가 많은 나이가 되었다. 상갓집 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런 절차에 꽤나 무심해졌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와 상황을 여쭌 뒤 으레 껏 슬픔을 위로하는 식의 말을 전하고 역시나 밥 한 그릇 잘 먹고 나온다. 덕분에 평생 가보지 못한 곳에 닿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과거의 얼굴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언제 한 번 보자”는 기약 없는 인사를 나눈다.
하필이면 최근 5~6년 사이 아빠를 잃은 친구와 후배와 나는 한 친구의 부친상에서 만나 “우리 이제 다 아빠가 없다”며 울다 웃다 하기도 했다. 웃다 울다 하면서도 인사를 놓친 사람은 없는지 챙기고, 지하철 막차 시간을 신경 썼다. 슬프지만 눈물을 닦은 뒤 내일이면 또 출근해야 하니까.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썩 유쾌할리 없겠지만 더는 크게 어렵지 않다. 그저 사회생활 중 드문드문 맞닥뜨리게 되는 일 중 하나로 다가온다고나 할까. 고인에 관한 직접적인 친분은 없지만 사회에서 만난 인연의 부친상쯤 되는 자리에 다녀오는 경험이 쌓인 덕분일까. 조의를 표한 뒤 상주들에게 적당히 슬픔을 전하고 자리를 어느 정도 지키다가 나오는 식이다.
‘인사이드아웃2’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슬픔에 무뎌지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각종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의 진폭이 줄어드는 일,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에 대한 역치가 높아지는 일이다. 매사 일희일비하며 감정의 파도를 타는 일 또한 몹시 피곤한 일일수도 있겠지만 매사 시큰둥 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그 사실이 슬퍼지기도 한다. 살아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일에 무너지지도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있는 힘껏 껴안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