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과 팝콘은 절친 중에 절친이다. 팝콘 없는 영화관을 상상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이 금지되고, 외부활동 자체가 꺼려지던 당시 영화관 역시 텅텅 비기 일쑤였다. 띄어앉기는 물론이거니와, 영화관 안에서 팝콤을 먹는 행위도 금지됐다. 팝콘 없는 영화관이라니. 앙꼬 없는 찐빵, 라면 없는 캠핑, 볶음밥 없는 곱창, 맥주 없는 치킨, 탕후루 없는 마라탕… 너무나 아쉬울 수밖에.
실은 비팝콘파인 나 역시도 영화관에서 팝콘 냄새가 나지 않으니 뭔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금지된 사랑이 더 절절하듯 뭔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영화관 내 취식금지가 해지되자마자 괜히 먹지도 않던 팝콘을 콤보로 사서 와구와구 먹어대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쩌다가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라떼는(!) 영화관 앞에 오징어며, 번데기 등을 팔았다. 손에 들고 오물오물 소리 나지 않게 먹기가 편해서 그랬을까? 하지만 오징어는 냄새에 취약했고, 번데기는 호불호가 너무나 강한 음식이었다. 먹는데 소리가 잘 나지 않고, 냄새도 크게 불쾌하지 않고, 혹시나 쏟아져도 청소하기가 쉬운 편이라는 공급자적 마인드에서 시작된 문화일 지도 모르겠다. 11월 11일에 빼빼로를 먹어야 할 것만 같은, 삼겹살데이에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 할 것 같은, 어쩌면 그 시작은 일종의 상술이자,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사한 뒤에는 짜장면을 시켜 먹어야 할 것 같은, 비 오는 날엔 전을 구워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일종의 클리셰들. 가끔은 그런 맛과 관련한 통속적인 순간에 인생의 진짜 재미를 맛보곤 한다. 아마도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이 더 맛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는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흑백요리사'처럼 셰프 이야기를 담았다.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 칼 캐스퍼가 레스토랑 오너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긴 뒤 음식평론가의 혹평을 받자 화가 나 홧김에 보낸 트위터로 보낸 욕설이 발화점이 되어 레스토랑을 그만두게 되는데… 이혼한 전처의 도움으로 푸드트럭을 인수받게 되고 쿠바샌드위치를 만드는 푸드트럭에 도전해 유명세를 얻고 미국 전역을 다니게 된다.
맛에 진심인 이들을 보면 그저 살고 싶어 진다.아메리칸 셰프의 칼처럼 관습에굴하지 않고 나만의 맛과 멋을 추구하며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라니!이런 맛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당장 쿠바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