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살 일대기 6

첫 번째 심리상담

by 솔솔
첫번째 심리상담.jpg


“ 나, 자살하고 왔어”


“그럼 이제 너 평생 못 볼 수도 있었겠네”


나는 가까운 2명의 대학생 동기에게 자살을 고백했다. 동기들은 애써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당황한 게 눈에 띄었다. 심리학과를 부전공하는 동기가 심리상담을 같이 받아 보자고 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리학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돈 많고 부유한 사람들의 유치한 놀이였다. 심리상담이라는 추상적인 행위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거지? 차라리 돈을 직접적으로 권해주는 게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빨리 구제해 주는 방법이겠어. 유학 다녀오고 공부만 해 온 샌님들이 인생의 고통을 알 리가 없잖아. 그렇게 불신을 감싸 안은 채 심리상담을 받았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는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가 존재했다. 나는 2주에 한 번 간격으로 센터를 방문했다. 담당 선생님은 20대의 예쁘고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나는 또다시 담당 선생님과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얼굴도 예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번듯하게 직장도 있는 선생님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같은 동성이라서 느끼는 질투심과 열등감이 상담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팽배했다. 나는 상담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그저 그런 형식적인 이야기만 오고 갔다.


“##씨, 많이 외로웠겠네요”


다만 선생님의 눈물에 나도 같이 운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내가 한강 마포대교 위에서 뛰어내리려다 내려온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은 불쌍하다며 펑펑 울었다. 나는 선생님의 눈물에 당황해 그만 같이 울어버리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그렇게 불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슴속에 그런 고통과 외로움이 있는지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나에게는 그게 감정의 기본 설정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나만의 세상 속에서 고독과 아픔을 철저히 곱씹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건 엄마가 나에게 한 폭력과 똑같은 행위이므로 절대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당시 나의 신조였다.


나는 스스로 우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인생은 약육강식이니 강해져야 한다는 아빠의 말버릇, 자신의 우울을 자식에게 떠넘기는 엄마의 정서적 폭력. 복잡한 가정환경이 나를 울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는 본인의 불행을 타인에게 맡기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를 만나는 날이면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고등학교 동창, 같이 심리상담을 받아 보자고 권했던 대학교 동기는 자신의 심리상담이 끝나자마자 수시로 전화해 가정사를 읊으며 울어댔다. 엄마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몇몇 어른들만이 위로의 한마디를 던져주었다.


“##아, 나 죽고 싶어”


“계속 그런 말 하면 갖다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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