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중 9

슬럼프

by 솔솔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2년 9개월 째이다. 매일 집 안 청소를 하고, 아르바이트 투잡을 뛰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하지만 나쁜 습관이 곧 돌아와서 나에게 슬럼프를 가져다주었다. 1년 동안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페 아르바이트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주 6일 동안 병행하는 생활에 점점 지쳐갔다.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생활의 질이 떨어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랑 카페 아르바이트 둘 중 제대로 해내는 게 없었다. 응급처치로 5개월 다닌 카페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나니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집중할 수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기운을 회복되고 나니, 스스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현실을 회피한 지 무려 5년이다. 그동안 원룸 방바닥에서 다음 카페 실시간 순위 검색어 순위나 검색하고 유튜브 숏츠나 보면서 인생을 허비했다. 하루에 한 번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고,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않은 적이 허다했다. 한 달 휴대폰 비용이 100만 원이 나올 만큼 금전 관리가 엉망이었고, 가끔 화장실에 가서 토할 만큼 몸 상태도 최악이었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금전적 지원을 끊은 2022년 6월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8달 전에 일이다. 2년 9개월 동안 많은 성과를 만들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실패는 한 사람에게 좌절감과 무력감을 안겨다 주었다. 다시 원룸 생활로 돌아가라고 인생이 주문을 걸었다.


방바닥에 눕는 건 너무나도 편안하다. 나는 약 2달간 원룸 방바닥 생활로 돌아갔다. 하루에 한 번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한 달에 휴대폰 비용이 100만 원을 넘는 기염을 또다시 토해냈다. 다행히 방 청소랑 아르바이트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냈다. 정신병원 약 타는 날도 겨우 날짜를 맞추어서 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환자 상태를 보자마자 집안에 틀어박혀서 컴퓨터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충고하셨다. 실제로는 아르바이트 끝나자마자 방 안에 누워서 배달 음식 먹고 블리치 보고, 진격의 거인 보고 한 게 전부였지만 속으로 뜨끔했다. 노력 대비 성과가 보이지 않는 삶에 점점 지쳐갔다. 유일한 자아실현 방법인 글쓰기도 몇 달째 손을 놓아버렸다.


전진이 있으면 후퇴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생의 터널에 지칠 때면 그래도 내가 밟고 지나온 발자국을 뒤돌아본다. 정신병원에서 약을 타고 돌아오는 어느 날, 더 이상 죽고 싶다, 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다. 그리고 자살 욕구가 일어나도 아주 강도와 빈도가 미미하다는 걸 알았다. 가끔 일을 하다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눈물이 터져서 30분 정도 감정의 여파가 생겨서 곤란하기는 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들던 예전에 비하면 장족 발전이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이제 적응해서 웬만한 카페에 가서 다 돈을 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포스기도 다 만질 수 있고, 돈 계산 실수도 없고, 초반에 가서는 오히려 직장에서 똑똑하다고 칭찬을 듣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돈 관리를 열심히 하고, 꼬박꼬박 저축해서 욕조가 있는 24평 임대 아파트로 가족 모두가 함께 이사 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르바이트로 180~190만 원 돈을 버는 것도 만족하지 못한다. 나이에 맞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싶고, 부모님이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싶다. 부모님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고, 수영을 끝까지 배울 수 있을 만큼 시간과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력과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우울증이라는 변명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사람들이 내가 우울증이라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걸 이해 못 해, 내가 우울증이라서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이해 못 해. 이 모든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떨쳐낼 때가 되었다.


자살 욕구에서 벗어난 지금은 인생 실패의 원인은 우울증이라는 병보다는 본인 의지와 근 5년 동안 쌓인 나쁜 습관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엉망이 되어버린 건강 관리와 금전 관리, 위생 관념과 시간 관리를 좋은 습관으로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좀 더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내 또래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얼 고민하고 있는지 공유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고 기르는 게 우울증 환자에게는 필요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기술, 인지 능력, 공감 능력을 키우는 연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울증 환자는 마음이 아픈 만큼 다른 사람들과 언어적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중증 우울증이라는 문턱을 넘고 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우울증 증상은 일상에 소소하게 영향을 미치고, 가야 할 길은 구만리처럼 쌓여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주저앉고 싶은 날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 현실이라는 벽에 도망치고 싶은 날들도 있지만 계속 사회에 나가서 깨지고 깎여 나가야 한다. 그래서 조각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이제 2년 9개월이 되어간다. 조금 있으면 3년이 되어간다. 부디 오늘보다 나은 내일, 작년보다 나은 금년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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