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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양 Dec 27. 2020

문어를 만나러 가자.

감정도 트랙킹 할 수 있을까요?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넷플릭스에 있는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작품을 보았다. 


오늘은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성공한 영화감독이 느끼는 회의감에서 시작된다. 회의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나?


삶에서 누구나 회의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성공한 영화감독도 자신이 좋아서 시작한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회의감은 자신이 좋아서 시작했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내가 회의감을 직면한 것은 올해 초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힘들었다. 밖에서는 손님들이 화를 내고 안에서는 직원들이 서로 힘들다고 화를 낸다. 그 속에서 그것들을 완화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더라.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구나. 내 최선이 그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구나.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다.


미래에는 더 나아질 거라는 확신. 그 확신이 없는 것뿐인데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삶을 살기 싫어졌을 때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하던 중에 내 감정을 직면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문어를 만나서 문어를 관찰하는 것처럼, 나도 내 감정을 마주 보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트랙킹을 시작했다.


바닷속에 있는 문어를 찾아보자는 거다. 나는 1000만 원을 모으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고 모았던 건데 막상 1000만 원을 모으니까 나는 그대로더라. 특별히 더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포기했던 것들만 자꾸 떠올랐다. 정말 피곤하고 힘들 때 먹고 싶었던 떡볶이, 꼭 사고 싶었는데 사지 않았던 옷들. 일상에서 포기한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무얼 원했던 걸까?


뭘 그렇게 원했길래 이렇게 큰 회의감을 느끼는 걸까? 그냥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먹고 싶던 맛있는 걸 먹고 사고 싶던 무언가를 샀다. 점점 나아지는 기분이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꿈을 잊어버렸다. 내가 왜 천만 원을 모으고 싶었던 건지. 그 꿈이 이제는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돈을 벌다 보니까 하고 싶은 일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돈을 벌어서 하고 싶던 돈 모으기는 이제 끝이 났다. 나는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영화 <라푼젤>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다. 라푼젤이 평생을 꿈꿔오던 등을 보러 갔다. 등을 보기 직전에 유진에게 이런 말을 한다. 


라푼젤 : 내가 꿈꾸던 것과 다르면 어쩌지? 
유진 : 같을 거야.
라푼젤 : 같으면? 그 뒤엔 또 어쩌지?
유진 : 뭘 걱정해? 새 꿈을 찾으면 되지.


내가 느낀 회의감의 정체는 이건 가보다. 나는 꿈을 좇는 사람이다. 그런데 천만 원을 모으고 꿈을 잊어버렸다. 그러니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앞으로 가고 싶은데 방향을 못 잡으니까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찾았다. 회의감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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