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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양 Feb 19. 2021

표류 중입니다.

작정하고 방황하기

 쉬는 날은 보통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된다. 지친 몸이 이부자리에서 일으켜지지 않더라. 그렇게 가만히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보면 금방 정오를 넘어선다. 이미 늦게 일어났으니 하루가 끝났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서 씻고 나갈 채비를 해본다. 


커피를 사러 가기로 한다.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카페를 향해 열심히 걷는다. '그래. 이렇게라도 걸어야지.' 그리고 사서 돌아온다.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왜 이렇게 맛이 없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날은 또 다르다. 정오가 넘어서까지 누워있다가 "오늘 날씨가 좋아서 걷고 싶네?"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따라 가는 길이 즐겁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 카페를 가기로 한다. 이 길의 끝에는 "맛있는 커피"가 있다. 신난다. 결과는? "역시 이 집 커피 너무 맛있다니까!"  내가 단순히 기분파라서 이렇게 느끼는 걸까? 





최근에 영화 <소울>을 봤다. 조 가드너라는 주인공은 재즈 뮤지션이 되어 공연을 하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중요한 오디션 당일 사고로 '태어나기 전 세상'에 가게 되고 우연히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불꽃을 찾던 22가 지구에서 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맛있는 피자. 따듯한 햇살과 떨어지는 나뭇잎 같은 일상적인 요소들 때문이었다. 22가 자신의 이런 생각을 전하자 조가 말한다.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 영화 <소울> 명대사 검색 결과 중 ooko****


나의 커피 이야기는 영화 <소울>이 주고자 하는 바와 겹치는 바가 있는 듯하다. 일단, 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사람인가 보다. 목적 없이 거닐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도착한 카페. 좋은 커피 향에 예상되는 맛. 그리고 다시  출발. 맞서는 햇빛과 바람. 몰랐는데, 이런 것들이 커피 맛을 더 좋게 할 수 있나 보다. 


어쩌면 나는 목적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라 과정이 재미없다면 결과는 기대도 되지 않는다. 목표를 이룬다는 것이 꼭 행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성취감이 영원한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래서 난 목적 없는 항해를 하겠다. 결국,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가는' 표류를 한다. 행복하다. 이게 바로 표류자의 행복인가 보다.


 



에필로그 : 적금은 의무감일까? 설렘일까?

어찌어찌하다가 22의 통행권을 가지고 공연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꿈꾸던 공연을 끝내고 상상하던 감정이 아닌 허무감을 느낀다. 그때 동경하던 재즈 뮤지션이 조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어린 물고기는 나이 든 물고기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전 바다라고 불리는 엄청난 것을 찾고 있어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다. "그건 지금 네가 있는 곳이야." 그러자 어린 물고기는 "여기는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 영화 <소울> 명대사 검색 결과 중 gog4***


적금이 만기 되어 천만 원을 모았을 때의 내 심정이 딱 이랬다. 천만 원만 모으면 모으는 과정과는 다르게 나는 좀 더 멋있어지고 행복해질 거라 기대했는데, 실제로 모아보니 여전히 그냥 나더라. 그저 내야만 하는 적금에 쫓기는 찌질한 내가 그대로 거기 있더라. 그래서 허무했는데, 마지막 적금이 만기 되고 나서는 기분이 조금 달랐다. 이제는 의무감에 쫓겨 넣어야 할 적금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다지 좋지는 않더라. 그래서 문득, 


정말 의무감뿐이었을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그랬다. 그렇게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는데, 학원에 가야 했다. 아침 수업이었고 평일 내내 들어야 하는 수업이어서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야 했고, 주말에는 오픈 알바 때문에 7시에 일어났다. 이렇게 2주를 지내다 보니 그 이후부터는 일어나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너무 피곤해서 학원을 땡땡이치기로 했다. 그래서 더 누워있는데 수업 시간이 다가올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더라. 학원을 빼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그다지 좋지 않더라. 


아, 모르겠다. 쉽게 살자, 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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