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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Dec 10. 2023

소중한 대화들

날 살린 말

나에게는 내가 죽음을 선택하려고 할 때마다 삶의 연장선을 그려주신 선생님들이 계신다.


첫 번째로 H선생님. 정말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많은 부분을 기여하신 선생님이시다. 상담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도 아니다. 그냥 내가 2년째 존경하던 과목 선생님이었다. 첫 번째 자살시도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했고 그냥 인생이 너무 어려웠다. 자살시도까지 한 내가 성공할 수는 있을지, 매일 밤 울면서 자해하는 내가 꿈을 이룰 순 있을지. 무서웠다. 내게 객관적으로 확신을 심어줄 어른이 필요했다. 그때 제일 먼저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래서 무작정 카톡을 보냈다. 제 얘기 좀 들어줄 수 있냐고. 근데 선생님이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방과 후에 상담을 하러 갔는데, 1시간 동안 말을 못 했다. '자살시도를 했어요.'라는 말이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심호흡을 몇 번이고 했지만, 말이 안 나왔다. 그러다가 겨우, 말했다.


저 자살시도를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백번은 돌렸는데 그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우셨다. 내가 울렸다. 천하의 선생님을. 마지막날 헤어질 때도 안 우시며 "난 학교에서 한 번도 안 울었어~"라고 하셨었는데 그런 선생님을 내가 울렸다. 처음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어른이 우는 걸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님은 더더욱. 그래서 내가 당황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그냥 미안해서, 지은이가 날 행복하게 해 줬는데 난 힘든 것도 몰랐네.


그때 든 생각. '아, 그래도 죽으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이렇게 나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약속했다. 부모님한테 말하기로 약속, 꼭 살기로 약속. 중간에 위기가 많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잘 지키고 있다. 요즘 들어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선생님이 나로 인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는 Y선생님. 내가 중학교 때 두 번째로 좋아했던 선생님이신데 이 선생님도 그냥 과목 선생님이셨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과목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 과목 시간에 내가 공황 증상이 왔다. 근데 예기 불안 때문에 그 시간이 너무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선생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편지를 썼다. 근데 답장을 써주셨다. 무려 3장이나. 손 편지로 답장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거기 쓰여있는 말이 너무 감동이었다. "그때 지은이가 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지은이가 H쌤과 Y쌤을 만나서 아픔을 나눈 것도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해."


이 운명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해, 지은아.


이 말이 마음에 박혀 한동안 선생님을 보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오는 걸 겨우 참으며 학교를 다녔다. 내가 울면서 손을 떨고 있으면 손을 잡아주셨고, 마음껏 울라고 해주셨다. 따스함을 느꼈고, 사람은 사람을 통해 치유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연락드렸는데 그때와 같이 마음이 따스해졌다.


마지막으로는 G선생님. 내 인생 첫 상담을 해주신 선생님이자 가장 오래 연락하고 있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시다. G선생님은 언제 연락해도 항상 놀라운 답변을 주신다. 위로와 해결책 그 사이 적절한 말들. 선생님의 입장에서가 아닌 진짜 먼저 살아본 어른의 입장으로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 졸업생이라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선생님과의 소중한 추억이 가장 많다.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나는 그런 추억. 이때의 행복을 믿고 살았다.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도움을 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이들은 100만 번 고민하고 어른들께 고민을 말하는 거니까 무조건 진심으로 듣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울면 손잡아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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