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같았던 대학병원 외래 진료날, 평소와 똑같이 자살 충동이 든다고 얘기했다. 근데, 돌아온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은아, 입원해 보는 게 어때?
내가 당황해서 되묻자 교수님이 다시 말해주셨다. "여기 입원하면 자살 충동이나 자해 충동이 들 때 바로 도와줄 수 있거든. 선생님이랑 상담도 매일 할 수 있고, 보호병동이지만 낮에는 핸드폰 사용도 자유로워. 밤에만 잠자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보관했다가 다시 아침에 줘. 입원 한 번 해볼래?"
병원에 입원하는 것 자체가 처음인데 그 처음이 정신과라고? 그것도 개방도 아니고 폐쇄로? 그것도 오늘 당장? 좀 생각해 본다고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엄마 아빠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너무 속상했고, 앞으로가 너무 막막했다. 입원까지 하면 진짜 인생이 멈출 것 같았다. 정신병자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학교도 걱정되었다. 학교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나중에 입원 확인서를 내면 학교에 서류가 올라갈 텐데 그럼 다 날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망설였다. 진료실 앞에서 30분은 고민한 것 같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오롯이 나의 결정이었고 후회는 없다. 그렇게 입원 절차를 밟았다. 응급입원은 아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한 후에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짐도 못 챙겨 왔다. 난 응급실 베드에 누워있고 각종 검사들을 하고 아빠가 집에서 내 짐을 챙겨 왔다. 근데 어차피 폐쇄병동이라 되는 물건보다 안 되는 물건이 더 많다. 그래서 필수품만 챙기면 되었기에 굳이 내가 안 갔어도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그리고 입원하다가 필요한 물건이 생겨서 전화해서가져다 달라고 하면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짐을 챙겨 온 아빠와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병동으로 올라갔다. 난 따로 층이 분리가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다른 과 병동과 같이 있는데, 철문으로 분리가 되어있는 형식이었다.
폐쇄병동으로 들어가려면 문을 3개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일단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짐을 제출하고 짐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는 키, 몸무게를 재고 간단히 문진을 한다. 두 번째 문을 통과하면 상담실로 들어가서 병동 규칙 같은 걸 듣는다. 그리고 이제 보호자와 인사를 하고 헤어져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 외출, 외박이 금지이기 때문에 정말 마지막이다. 마지막 세 번째 문을 통과하면 진짜 병동이 나온다. 내 침대로 가면 짐 검사를 마친 짐들이 자리에 놓여 있고, 옷을 갈아입는다.
들어갔는데,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내가 들어온 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고, 식사시간이어서 각자 밥만 먹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병동사람들을 잘 만나서 그런지 생활이 힘들지도 않았고, 고단하지도 않았다. 그냥 되게 재밌었다. 그렇게 맘 편히 웃어본 게 몇 년 만이었는지. 여기선 모두가 쉬라고 해준다. 밥 잘 먹었냐고, 잘 잤냐고, 기분은 어땠냐고, 그런 일상을 물어본다. 난 그런 일상을 잃어버렸었고, 그게 그리웠고, 그걸 찾고 싶었었다. 말 그대로 '안정'을 찾고 나온 것 같았다. 내가 입원하고 옆자리 언니와 친해지고, 그날 저녁 같은 병실 거의 모두와 친해졌다. 병동엔 자해 위험성 때문에 커튼이 없다. 그래서 내 앞사람이 뭐하는지, 옆사람이 뭐하는지 다 보인다. 그래서 맘만 먹으면 다 친해질 수 있다. 다들 너무 착해서, 아팠다. 입원하면 남는 게 시간이라 난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렸지만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안 하고 그냥 누워있었다. 처음엔 기분이 이상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적응이 안 됐다. 근데 쉼표가 사람을 숨 쉬게 만들고, 여유가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같았다. 병동에서 불편한 건 정말 많다. 화장실 문도 안 잠기고, 창문도 못 열고, 샤워실도 한 개뿐, 시간도 정해져 있는 데다 문도 못 잠근다. 드라이기도 맘대로 못쓰고 그냥 불편한 거 투성인데, 그 속에 편한 마음이 자라났다. 신기했다. 그렇게 퇴원날짜가 다가왔고, 난 비교적 짧게 있어서 장점을 많이 느낀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좋았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