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그 이후
원래 내 상태를 가장 모르는 법
그렇게 폐쇄병동에 입원을 하고 퇴원을 잘 마쳤다. 그 이후 안정을 찾은 줄 알았는데, 학교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리고 폐쇄병동에서 퇴원한 게 호전 퇴원이 아니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 약속을 가기 위한 '자의 퇴원'이었기에 내 상태가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를 가니 여전히 불안하고 학교 생활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폐쇄병동에 또 입원하기엔 무리가 될 것 같아서 자살충동이 좀 잦아들었으니 개방병동에 입원하면 안 되냐고 교수님께 말해봤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셔서 개방병동에 약 2주간 입원하게 되었다.
근데 나 정말 어리더라. 병원에선 만 나이를 사용하니 평소보다 더 어린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환자분류표의 나이를 볼 때마다 놀랐다. 내가 이렇게 어렸나. 근데 뭐가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그 나이를 보고 처음으로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냥 위로 한마디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나의 소중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개방병동에 있으니까 확실히 자극이 더 많았다. 우선 산책이 가능하니 외부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확실히 트리거가 되는 요소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약국이라던지, 차도라던지, 높은 건물이라던지. 근데 외부 음식(간단한 간식)도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비교적 편하게 쓸 수 있다. 커튼도 있어서 사생활 보호도 된다. 그래도 정신병동이다 보니 날카로운 물건은 반입이 안 됐고, 간호사실에 맡겨놨다 말하면 쓸 수 있는 구조였다. 그거 말고는 거의 다 가능했다. 노트북도 반입이 가능해서 너무 행복했다. 폐쇄는 핸드폰이랑 이어폰에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자리가 창가 쪽이었는데 아침마다 햇빛이 들어오는 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밤에 반짝이는 불빛들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커튼에 그림자 놀이 하는 것도 재밌었다. 병원에서는 확실히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 되는 걸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한 3일 있다가 나랑 한 살 차이 나는 언니가 입원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다 보니 빨리 친해졌다. 그래서 산책도 같이 나가고, 편의점도 같이 나가며 놀았다. 그 언니 덕분에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언니가 입원고수였기 때문이다. 그 언니 덕분에 더 편하게 입원 생활 잘 마치고 올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병원에 있다 보면 확실히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죽음이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때가 많다. 개방 병동 옆이 폐쇄 병동인데 가끔 소리 지르는 환자들의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내가 폐쇄에 입원했을 때는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들이 대부분이었어서 액팅아웃을 하는 환자들은 거의 없었는데 내가 개방병동에 있을 때는 액팅 아웃을 하는 환자들이 꽤나 있었다. 보통 소리 지르는 내용은 나 죽을 건데 왜 여기 가둬두냐고, 빨리 죽게 퇴원시켜 달라는 내용이다. 그럼 난 또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애써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처음 들었던 그 외침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인다. 왜 그렇게 죽음이 간절한지 난 조금이나마 안다. 근데 저렇게 외치는 환자들이 너무 많다.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였지만 퇴원할 때쯤에는 익숙해졌다. 그리고 병원에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코드블루"라는 방송이 울려 퍼진다. 여기서 "코드블루"란 심정지 환자가 발생해 CPR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그럼 담당 선생님들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병원 전체에 저 방송이 울려 퍼진다. 낮이건, 새벽이건 상관없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처음 들었을 때는 엄청 깜짝 놀랐지만 퇴원할 때쯤에는 익숙해졌다. 이렇게 두 상황을 겪으며 죽음이 나에게도 무뎌지는구나 했다. 죽음이 나에게서 좀 멀어졌으면 했다. 너무 죽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잘 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잘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죽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가벼운 마음이 좀 사라지고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쯤 퇴원날짜가 다가왔다.
난 입원하느라 인생 처음으로 기말고사 응시를 못했다. 수행평가도 못 봤다. 그래서 성적표는 개판이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E로 가득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담임선생님이 내 성적표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셔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내가 입원하는 동안 전화도 해주시고 위로도 많이 해주셨다. 그 위로는 서투셨지만 그 마음은 잘 느껴져서 감사했다. 퇴원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죽음에 대해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2023년이 평화롭게 지나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