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후 한 달, 이제 친구들과 막 친해지고 선생님들은 이제 수업진도를 나가시고 수행평가를 치르려는 그때 자퇴를 했다. 첫 시험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자퇴를 했다. 내 기억 속 고등학교는 그저 아픈 공간이다. 물론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추억들도 많이 쌓았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첫날부터 친해졌다. 근데 학교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처음으로 날 이해해주지 않는 어른들을 만났고, 그 시선과 말투는 나에게 너무나 차가웠다. 자퇴를 하기 3일 전까지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압박도 너무 컸다.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입원해 있느라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 나머지, 친구들을 못 따라갈까 봐 너무 두려웠다. 내가 성적이 떨어진다는 게 상상이 안 됐다. 떨어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모의고사 날에도 그게 두려워 죽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는 자살을 회피의 방법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모의고사 다음날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응급실에 다녀오면 그날 하루는 제정신이 아니다. 약기운 때문에 거의 반수면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를 못하고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내가 준비 못했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이름만 써서 내도 괜찮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이야기했는데 난 너무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수행평가를 그냥 낸 후로 자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던 것 같다.
자퇴를 친구들에게 말하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최대한 늦게 알리라는 담임선생님 때문에 며칠 전에 말했고, 당일 날 알게 된 친구들도 있었다. 근데도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작별인사를 해줬다. 매점에서 초코파이를 사 와 케이크를 만들어줬고, 한 명 한 명 모두가 편지를 써줬고, 시험기간이라 출입이 어려운 교무실에 찾아가 선생님들마다 편지를 받아다 줬다. 그걸 일일이 스케치북에 붙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줬다. 칠판엔 나를 향한 메시지로 가득했고, 가운데에는 내가 그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이벤트였다. 내가 편지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나도 전날 썼던 편지를 친구들에게 읽어줬다. 자퇴가 늦춰진 이유는 딱 하나, 너희를 만나서라고 내 진심을 전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서로의 진심이 서로의 마음에 닿아 그날 친구들과 같이 울었다. 나에겐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그날 써준 편지들을 1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꺼내 읽어보고, 그날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던 초코파이 박스도 안 버리고 간직하고 있다.
모두가 앞을 바라보고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브레이크를 밟아 잠시 멈추는 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정확한 진로가 있어 그걸 위한 자퇴도 아니었기에 많이 두려웠다. 시기적으로도 연초였기에 그만두는 일보다는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냥 했다. 1년을 버텨볼까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등교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을 것 같았고 그럼 차라리 자퇴를 하고 학교라는 환경에서 벗어나보자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이 되었을 때도 호전되었기 때문에 그 효과를 기대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병에 의해 떠밀려 자퇴하지 않고,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시각을 넓혀 자퇴라는 선택지를 고려해 봤어도 후회를 안 했을 정도로 자퇴 후 삶이 만족스럽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자퇴생이 생각보다 많더라. 내가 자퇴를 하고 여러 활동들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자퇴한 청소년들이 정말 많고, 이유도 정말 다양하다. 자퇴생 100명이 있으면 이유가 100가지 있을 정도로. 그러니까 자퇴생들을 좀 더 말랑한 생각을 가지고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퇴하고 상태는 괜찮아졌냐고? 그건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