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거짓말이다. 오히려 더 힘든 날도 있었다. 이제 난 힘들 이유도 없는데 왜 힘들지?라는 생각이 날 따라다니며 날 괴롭혔기 때문이다. 이제 부모님도 날 힘들게 안 하고, 학교도 안 다니고, 어느 정도 외부적인 요소로부터 벗어났는데 왜 난 그대로 힘들까. 난 이제 안 힘들어야 '정상'인데 왜 '비정상'일까. 근데 힘듦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외부적인 것에서만 힘듦이 오지 않는다. 난 상황에 의해서만 힘들어진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상담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에게서 힘듦이 시작될 수도 있는 거였다. 예를 들면 완벽하지 못한 나를 견디지 못할 때, 자존감이 없는 나를 마주할 때 등등.. 4월에 자퇴를 하고 난 2023년 중 5월이 가장 위기였다. 나의 세 번째 자살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때가 위기였나 생각해 보면 원인을 모르는 힘듦을 마주해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원인이 나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힘들 이유가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원인이 없는데 이렇게 우울한 건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자기혐오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원인을 모르는 힘듦을 마주할 때가 난 가장 버겁다. 그래서 내가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원인을 알면 그동안 내가 힘들었던 시간들이 다 설명될 것 같고, 설명이 되면 내가 이해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해가 안 돼서 힘든 시간들도 많아서 날 이해시키고 싶었다. 그러려고 상담을 받는 거 기도 하고.
난 내 우울증이 완치되면 안 힘들어질 거라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안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자해를 안 할 때도, 우울증이 없을 때도 힘든 일은 똑같이 있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힘들 때 우는 날은 있었지만, 죽음을 생각하진 않았다. 버거울 때 포기를 생각했지만 그게 삶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울증이 무섭다. 나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삶을 내 손으로 버릴 수 있다는 것, 그걸 결정하기까지 많은 눈물을 혼자서만 흘려야 한다는 것.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되는 것. 그 어떤 말도 안 들리게 되고, 다 놓아버리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결국은 죽음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되게 만드는 병. 점점 죽음과 가까워지는데 그걸 모른다. 몸이 아프면 점점 아파지니까, 힘이 빠지니까 죽음이 다가오는구나 자신도 준비를 하고 가족들도 할 수 있는데, 자살은 자신도 모르게 혼자 조용히 죽어간다.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는 삶을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