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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Dec 28. 2023

떳떳하지 못한 마음

자퇴생의 진짜 속마음

생각해 보면 난 자퇴를 하고 나서 그 사실을 떳떳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가족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난 어른들이, 그리고 사회가 자퇴생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억울하다.


학교도 못 버티고 나온 애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
3년도 못 버티고 나온 거잖아.
대학에서 뽑아는 주겠어?

그리고 실제로 그 시선들을 마주하면 굉장히 위축되어 버린다. 억울하면 말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위축되어 버리는 내가 너무 답답하고 그렇다고 말하자니 변명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에 갔었는데 한 선생님이 "요즘에는 3년 버티고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거야, 그렇지?"라고 하셨다. 그 당시엔 그냥 "맞아요ㅎㅎ" 하고 넘어갔는데 속으로는 되게 속상했다. '아 선생님한테는 내가 그냥 학교를 못 버티고 나온 학생이구나, 내가 베이킹 자격증도 따고, 검정고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까지 내도 그냥 못 버티고 나온 학생이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며칠간 속상했었다. 세상은, 어른들은 내가 뭘 해도, 어떤 성과를 내도 결국 대학을 가기 전까지 그냥 "자퇴생"으로만 본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내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일을 하게 되어서도 사람들이 '자퇴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날 인정해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대학이 더 간절하면서도 가고 싶지 않다. 이 양가감정, 지겹다. 대학을 가면 사람들이 '자퇴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날 바라봐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간절해지다가도, 결국 그렇게 가는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가고 싶지 않아 진다. 예전에는 진짜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대학이 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대학교 이름이 중요한진 않았는데, 이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배우고 싶은 것도 없고, 대학교 이름에 더 눈이 간다. 아니 정확히는 배우고 싶은 걸 굳이 대학에서 배워하나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냥 대학교 이름만 신경 쓰게 된다. 흔히 말하는 '인서울 대학'이 아니면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근데, 내가 떳떳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도 자퇴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한다.


"그냥 남들 다 하고 버티는 건데, 그걸 못하고 자퇴를 하다니. 다른 애들은 학교 재밌어서 다니나, 다 대학 가려고 참고 다니는 거지. 우울증이 뭐 대수라고, 학교를 못 나갈 정도로 심했나?"


사람도 참 간사하지. 그때는 살려달라고 엉엉 울면서 학교 나갔으면서 그만두고 좀 나아지니까 기억이 미화된다. 좋았던 기억만 남는다. 그래서 '내가 좀만 더 강했으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좀만 더 의지가 강했으면 1학년을 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계속 생각을 한다. 학기 말이 되고, 연말이 되니 그 생각이 더 자주 든다.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는 병인 걸 이젠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공부를 안 하면 멈춰있는 것 같다. 학교를 안 가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자격증을 따고, 학원 수업을 듣고, 글을 써서 책을 내도 난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느낌이다. 근데 공부가 너무 싫다. 단순히 힘들어서 하기 싫다기보다 공부라는 행위가 너무 무섭다. 정확히는 학교 공부가 두렵다. 근데 이 행위가 왜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지 모르겠다. 내가 예전에 어떻게 매일 10시간씩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 한 번도 졸지 않고, 집 와서 공부하다, 학원 갔다가, 와서 또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너무너무 막막해서 울고 싶다. 다들 공부가 잘 돼가냐고 물어본다. 나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있는데, 공부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그럼 '자퇴생은 공부 안 하고 논다'라고 생각할까 봐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난 공부하는 걸 좋아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공부를 해서 결과로 내보이는 게 내 삶의 전부였다. 근데 그걸 안 하니까 계속 멈춰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공부를 한 번 멈춰서 그런가 겁을 먹어버린 것 같다. 너무 겁먹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에 너무 많은 걸 해왔어서 이걸 다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 마치 초보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을 1등으로 오르다가 굴러 떨어져서 부상을 입어 크게 다쳤는데 다 회복되었는데도 또 다칠까 봐 시도조차 안 하는 느낌이다. 이젠 다친 사람도, 훈련을 충분히 해서 초보도 아닌데, 에베레스트 산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근데 올라야 한다는 압박감과 1등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계속 느끼고 있어 점점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산을 1등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면 되는데 또 포기가 안된다. 이게 내 진짜 속마음이다.


진짜 지금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문제인걸 안다. 걱정해 봤자 걱정만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불안해서 걱정을 계속하게 된다. 이 걱정, 언제쯤 멈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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