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리 Jul 21. 2021

사물화 된 관계에서 인격적 관계로

장애학생과 속기 도우미의 관계의 정의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타인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개체적 존재이기도 한다. 인간은 이처럼 관계성과 개체성을 다 갖고 있다. 인간은 ‘나’로 혼자 존재할 때가 아닌, ‘너’라는 대상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되고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너로 인해 완전한 나의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곡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곡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가 있다. 이러한 관계는 ‘나-그것’의 관계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나’는 ‘너’를 안중에 두지 않는 고립된 존재로, ‘나’의 목적에 따라 ‘너’를 ‘그것’로 취급하여 경험하고 이용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나’는 ‘너’로부터 가능한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를 이용하는 능력만 발전시켜 사람 간에 필요한 관계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사물화 된 관계 중 뭐가 있었는지 떠올려보니, 장애학생 – 도우미 관계가 떠올랐다. 나는 도우미를 ‘그것’로 생각할 수 도 있고, 도우미 또한 나를 ‘그것’로 생각할 수 도 있다. 나는 원활한 강의를 듣기 위해 속기를 해주는 도우미가 필요해서 도우미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도우미는 결과적으로 봉사 장학금을 받게 된다. 모든 도우미가 장학금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속기해주는 것이 아니겠지만, 일부 도우미는 그럴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장애학생을 ‘그것’로 생각하는 도우미는 장애학생과 소통하는 것부터 속기하는 태도까지 불성실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지각하거나 결석할 때도 장애학생에게 미리 얘기를 안 하고 무단으로 한다. 도우미의 불성실함은 결과론적으로 도우미와 장애학생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어렵게 되었으며, 한 학기만 도와주는 일회성 봉사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장애학생은 학업에 차질을 겪을 뿐만 아니라 크나큰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나 역시 도우미를 ‘그것’로 생각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도우미를 ‘그것’로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나도 처음에 도우미를 ‘그것’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 도우미와의 관계를 잘 이어감으로써 사물화 된 관계에서 진정한 관계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매번 학기가 바뀔수록 장애학생인 나를 ‘그것’로 보고 이용하려는 도우미를 만나기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실망만 늘어가고 도우미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인격적 존재로 대하지 않고 도구로만 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감정적인 교류를 차단하고 사물화 된 관계를 계속 이어가다가 기존 도우미와 180도 다른 도우미가 나타났다.


 그 도우미의 이름의 첫 글자를 따 T라고 지칭하겠다. T와 대화 나누기 전에도 ‘이번 도우미도 나를 이용하겠지?’라고 편견에 사로잡힌 상태로 대화를 나눠보고 밥도 같이 먹고 수업도 같이 듣고 한 학기 내내 같이 다녔다. T는 나를 ‘그것’과 장애학생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스럽고 친구 같은 후배로 소중히 여겨주고 대해줬다. 같이 다니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T는 장학금을 받지 않고 3년 동안 내 도우미를 해줬다. 장학금을 받아도 내 덕분에 받았다고 같이 여행 가자고 제안해 장학금으로 제주 여행을 같이 다녀왔다. 나는 T의 진실된 마음이 느껴져 나도 마음을 열고 현재까지도 T와 계속 연락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는 깊고 인격적 관계로 거듭났다. 3년 넘게 T의 영향을 받아 내 성격도 점차 긍정적이고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으로 변했다. T와의 관계를 통해 내면적으로 한 층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인간을 도구, ‘그것’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 일임을 깨달았다.


 T과의 관계 속에서 진실되고 인격적 관계가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인간관계에서의 확고한 기준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T와 나는 졸업하고 T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나는 다른 꿈을 위해 제2의 대학교에 다시 입학하게 되었다. 제2의 대학교에서 수많은 속기 도우미를 경험했고 그 속에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인격적 관계라는 기준점이 너무 높은 걸까? 아니면 너무 이상적이었을까? 인격적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속기 도우미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그것'의 관계로만 남게 되었다.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T 덕분에 찬란하고 행복하게 마쳤던 제1의 대학생활,

 과정은 달콤하고 행복했지만 결말은 인간관계에 배신감과 회의감만 남긴 제1의 대학생활은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작가의 이전글 청각장애 교사와 발달장애 학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