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어요.
어학연수를 떠나겠다고 결심해버렸다.
스무 살 때부터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머니는 여유가 생겼지만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집, 학교, 아르바이트를 반복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어있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꽃다운 나이 20대가 그렇게 흘러 지나가 버릴까 초조했다.
무엇이든 좋으니 지금의 반복되는 삶이 아닌 새로운 일탈이 필요했다.
'가자, 아일랜드로'
그렇게 바로 행동에 옮겨버렸다.
나는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는 편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생각으로 진행한 것이라면 그다음 단계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후회하거나 행동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기에 어차피 행동할 것이라면 하루라도 빠른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주변 사람과 아일랜드 친구들이 왜 이곳 아일랜드를 선택한 것이냐고 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과 멀잖아.'
아일랜드는 한국과 멀다. 시차가 8시간 차이가 날만큼 먼 곳이다. 일단 한국사람이 많이 없는 나라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어학연수를 마음먹은 동시에 한국이 아닌 곳에 가서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부딪혀 보고 싶었다.
아일랜드의 생활은 홈스테이부터 시작했다. 홈스테이 파더(?)가 공항으로 픽업하러 와주셨다.
'와, 진짜 외국인이다...'
너무 떨렸다.
비행은 어땠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동양인인 내가 궁금한 모양인지 질문을 쏟아내던 그분의 질문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웃고만 있었던 기억이 그때도 지금도 볼이 뜨겁다.
한 달을 홈스테이 가족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12개월 아일랜드 생활하면서 10할의 추억 중 8할이 홈스테이에서의 추억이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나에게는 영향이 컸다.
홈스테이 가족은 4인 가족이었다. 아빠, 엄마, 7살과 4살 딸로 구성되어있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처음으로 가족 모두와 인사했던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들의 첫인상이 아직도 강렬하다. 한국은 가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은 검정 머리카락인데(당연히) 그곳 가족의 머리카락 색은 가족임에도 다 다른 색이라는 점이 신기했다. 엄마는 블랙 컬러, 아빠는 오렌지 컬러, 첫째 딸은 레드 컬러, 막내딸은 브라운 컬러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 얼굴은 똑 닮았다는 것이다.
이 가족은 보기만 해도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이들 덕분에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문화를 실제로 접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하루 일과를 공유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저녁식사를 마무리하면 꼭 디저트 시간이 따로 있었고 일주일에 하루는 tv앞에 모여서 영화 보는 시간도 있었다. 그날은 팝콘을 직접튀겨서 바가지(?)에 담아서 먹는 날이었다. 홈스테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잠들기 전에 꼭 책을 한 권씩 읽어주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정말 부러웠다.
안락했던 홈스테이 생활은 화살보다 빠르게 4주가 지나가 버렸다. 이 집에 있으면서 아일랜드인이 된 것처럼 소속감을 느꼈었는데 비싼 홈스테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월세방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홈스테이 마지막 날 그곳까지 짐을 옮겨주고 차로 배웅해주었던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인지 난 지금도 아일랜드가 좋은 기억뿐이다.
best wishes..
아일랜드에서 장기간 생활을 해야한다면 세가지 방법이 있었다. 기숙사, 홈스테이, 그리고 셰어하우스.
뱅크오브아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