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몇몇 순간들은 유독 강하게 기억에 남아 주기적으로 우릴 그 순간으로 데려가곤 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3 때 엄마와 대학문제로 다투던 일이다.
다퉜다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집을 뛰쳐나갔던 일.
그때 내가 엄마에게 화를 냈던 이유는 서울이 아닌 집 근처 대학교에 진학을 하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엄마한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이유가 뭔데? 서울 안 갈 거면 내가 지금까지 왜 공부했어?!!"
그렇게 인생 처음으로 엄마한테 큰 소리를 치곤 집 근처 강둑에서 한참을 혼자 엉엉 울었고,
엄마는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나를 찾아 한참을 헤맸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내가 무슨 밤새 코피 나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또 잘했던 학생처럼 생각되겠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0교시 시작 전에 학교에 가서 미리 공부를 했을 정도로 나름 성실하고 최선을 다했던 나였기에,
그리고 그렇게 했던 이유가 오로지 '인서울'을 향한 갈망이었기 때문에
당시 집 근처 대학에 가라는 엄마의 말은 내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물론 30대가 된 이후부터 이 순간을 떠오를 때마다 내 감정은 자연스럽게 엄마한테 이입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집 형편은 무척 어려웠고,
당연히 엄마는 내가 서울 사립대에 가게 되면 감당해야 할 등록금과 자취비용이 걱정됐을 것이다.
자식이 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해 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저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내질렀던 말들이 엄마의 가슴에 콕콕 박히는 모습도 함께 상상되곤 한다.
그럼 나는 그런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그때 왜 그렇게 '서울'에 목을 맸을까?
당시 내겐 어떤 대학에 들어가는 것, 어떤 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 목표 그 자체였다.
내가 했던 말 그대로 공부를 오직 서울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고등학교에는 '한 번쯤은 서울 살아보자', 'ㅇㅅㅇ(인서울)',
'2호선을 타자'라는 급훈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수험생들이 '인서울'을 목표로 공부하지만
당시 내 주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나는 더욱 '인서울'에 대해 간절했다.
왜 그랬을까? 지방 국립대가 서울의 여느 대학보다 더 인정받기도 하고,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그게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었을 텐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게 '서울'은 도피처였던 것 같다.
나를 귀여워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던 아주머니, 할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와 돈을 갚으라며 소리치고,
그 소리가 내 방에 들릴까 안절부절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지 않아도 보였던 시간들이었다.
돈 문제 때문에 아빠, 엄마는 자주 다퉜고
그때 내가 제일 부러웠던 사람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둘째 언니였다.
우리 집 주변에 국립 대학교가 있으니 그걸 뛰어넘을 만큼 좋은 대학이 아니면
내가 집을 벗어날 명분이 없었고, 그러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국 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을 했고
무궁화호를 타고 캐리어를 질질 끌며 서울에 있는 언니의 자취방에 입성,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in서울'을 했다.
사실 그때 내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서울'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언니가 부모님께 쓴 편지였다.
직접 경험해 보니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 이런이런 점이 좋더라,
동생이 서울에서 생활해도 같이 자취방을 쓰면 되기 때문에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거다,라는
나름의 이유를 들며 부모님을 설득하는 편지를 썼고
엄마는 나중에 그 편지 때문에 날 서울로 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날 서울로 보낸 건 엄마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결정적으로 엄마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엄마 몰래 집 근처 국립 대학교에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재수를 시킬 게 아니라면 내가 지원한 세 대학 중 한 곳엔 무조건 보냈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불효(?)까지 저지르고, 울며 불며, 언니의 도움까지 빌려 난 서울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에게 '서울'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