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서울 친구

by 찌지링

서울에 올라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자취방 근처를 돌아다니다 식당 벽에 붙여놓은 알바 구인글을 봤고,

선배 알바 언니의 간단한 면접을 거쳐 알바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무수히 진행될 내 '면접인생'의 시초였다)

서울에 상경해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벌다니!

처음엔 알바 자리를 구했다는 것만으로 설레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식당 사장님 부부가 한 아이돌 멤버의 부모님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론

그 아이돌과 인사하는 모습까지 상상하며 창피하지만 춘천에 있는 친구들한테 자랑까지 하곤 했다.


하지만 인생 첫 알바는 내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하필 내가 일했던 식당은 태국 음식 전문점이었고

그때까지 한 번도 태국음식을 직접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내게 식당 메뉴판은

그야말로 외계어 판이었다.

손님이 '팟타이, 얌운센, 팟 끄라프라우 무 쌉 하나씩 주세요'라고 하면

그때부터 머리가 새하얘졌고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나오는 음식을 서빙만 하다 보니

몇 번의 실수가 이어졌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사장님께 크게 혼났던 사안은 따로 있었는데 그건 바로 '청소'때문이었다.

어느 날 사장님은 화장실 청소를 왜 제대로 안 하냐며 날 화장실로 끌고 가

여기도 더럽고, 저기도 더럽다고 계속 지적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를 한바탕 혼낸 뒤 사장님은 식당을 나갔고

난생처음 청소를 못해서 혼이 난 나는 풀이 죽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태국인 언니, 오빠가 나에게 다가왔고

그들은 내 나이랑 학교 등 기본적인 것들을 이것저것 묻더니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들려줬다.


"사실 화장실 청소 다른 알바는 안 해~ 너만 하는 거야!"

"네? 왜요?"

"다른 아르바이트생이랑 사장님이랑 사귀거든!"

우리 언니랑 같은 대학을 다니는 그 알바 언니랑 나이 많은 남자사장님이 사귄다고?

그것도 여자 사장님이 같이 일하는 가게에서?

(난 이후 내 눈으로 충격적인 장면 몇 가지를 목격하며 이 이야기가 사실이란 걸 알게 됐다)

'사랑과 전쟁'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다니.

당시 난 '역시 서울은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생각했고

동시에 나 혼자만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사실이 무척 괘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식당 알바에 영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알바를 그만뒀다.


이렇게 아주 잠깐 했던 알바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내 인생 첫 알바였어도 아니고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던 불륜 사건 때문도 아니다.

바로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태국 언니, 오빠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사귄 나의 첫 친구들이었다.

식당에서 우리가 셋만 있는 시간은 아주 드물었지만 언니, 오빠와 나는 화장실 청소 때문에

내가 혼쭐난 그날 이후로 일이 끝나면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지곤 했다.

모든 게 어리숙했던 나를 챙겨준 건 사장님도 알바 선배도 아니었고

태국에서 돈을 벌러 한국에 왔던 그들이었다.

우리 친언니까지 합세해 언제부턴가 우리 넷은 친구가 되었고 자주 함께 만나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언덕을 계속 올라가야 나오는 그들의 집에도 초대받았는데

공간은 아주 낯설고 어두웠지만 넷이 둘러앉아 한참을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내가 새로 아이스크림 체인점 알바를 시작했을 때

그곳을 찾아와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언니, 오빠가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들은 우리 친언니를 만났을 때 '얘 아직도 일 못해!'라고 말하며 웃으면서 날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몇 달 뒤 고향인 태국으로 떠났다.

우린 서로의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꼭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했지만

몇 번 채팅을 주고받은 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이 두 사람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이들을 그리워할지를.


짧은 만남이었지만 누군가 내게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가장 그리운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나는 태국 언니, 오빠를 말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착한 사람들,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해 준 사람들, 아무 계산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었던, 나의 첫 서울 친구들.

태국으로 떠나기 전 가까운 참치전문점에 우릴 위해 돈을 맡기고 갔던,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내게 참치회 맛을 알려준 사람들.

그때는 마냥 고마운 마음만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었던 그들에게

내 존재가 생각보다 더 컸던 것 같아 그 일만 생각하면 더욱 그들이 그리워진다.

언젠가 꼭 그들을 다시 만나서 말해주고 싶다.

나 이제는 꽤 일 잘하는 어른이 됐다고. 언니, 오빠한테 참치회 마음껏 사줄 정도로 돈도 많이 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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