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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지링 Jan 21. 2024

Q3. 엄마의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어떤게 떠올라?

Q.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어떤 게 떠올라?


엄마, 다시 불러보아도 가슴 뭉클한 우리 엄마.

엄마는 키도 작고 왜소한 몸이지만 아주 부지런하고 깔끔한 분이셨다. 

자식들 아들, 딸 열을 낳으셨고 예전엔 어릴 적 홍역, 수두로 열이 너무 올라 4남 1녀를 잃으셨다.

그래서 1남 4녀를 두신 어머니.

아버지는 동네 이장일을 보셨는데 욕심이 없고 게으르셨단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을 터이니 많이 힘드신 걸로 알고 있다.

우리 집엔 아주 예쁘신 할머니가 계셨는데 어릴 적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랑 같이 잠도 자고 소풍도 같이 가고 춘천 시내도 다녔으며 사월초파일엔 봉의산 절도 다녔다.

엄마를 생각하면 기억나는 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 

무말랭이, 고춧잎 무침, 무장아찌, 콩자반, 두부찌개. 아, 먹고 싶다.

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화롯불에 미루나무버섯, 무웃국.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어머니의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시집을 오고 난 후 어느 봄 날은 손수 쑥 개떡을 만들어 오셨다.

표현은 안 하셨지만 우리 엄마도 나를 많이 사랑하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가 되셨을 때 남동생인 아들을 따라 인천 계양구 부평 쪽으로 이사를 하셨는데 친정에 갈 때마다 딸이라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속상한 마음을 내게 얘기했었다.

내가 온다고 하면 아침부터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막내 사위를 보면 부지런한 걸음으로 슈퍼에 가셔서 막걸리 한 병과 담배를 한 값 사 오셨다.

우리 엄마 머리는 쪽을 찔러 비녀를 꽂으셨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커트 머리에 파마를 하셨는데 내가 엄마에게 '엄마 파마하니 이쁘신데' 했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오랜만에 엄마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니 지금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병원 신세 한번 안 지시고 83세 어느 봄날, 나는 이제 가야 한다며 보따리를 싸셨단다.

그날 저녁 내가 꿈을 꿨는데 어릴 적 살던 집에 분명 엄마가 계셨는데 소양강 물이 불어 진흙탕 물이 엄마가 계신 집을 덮쳐버렸다.

난 소리를 지르며 우리 엄마 어떡하냐며 눈을 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진실로 엄마가 보고 싶다.

불쌍하신 우리 엄마, 슬프다. 넘 그리웁다.

지금 살아계심 맛있는 먹거리와 밍크조끼를 사드리고 싶다.

풍요롭지 않았던 엄마의 삶.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지금의 막내딸은 행복하니까.



엄마, 난 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세 딸의 엄마', '아빠의 아내', '맏며느리' 이런 것들이고, 아마도 가장 나중에 떠오르는 것이 '딸인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

내 기억 속에 '딸로서의 엄마'는 거의 없으니까.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게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적잖아.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 할머니를 많이 만나지 못했고, 명절 때도 맏며느리로서 제사 지내랴 시댁 식구들 챙기랴 친정에 한번 간 적이 없었지. 


어쩌면 엄마는 '딸'로서의 자리를 너무 빨리 떠나버렸던 것 같아. 

그러고는 우리의 엄마로, 아빠의 아내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오랫동안 살았지.

그래서 처음으로 엄마 편지를 읽으며 '딸인 엄마'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볼 수 있었어.


늘 내가 집에 가면 평소 먹고 싶다고 했던 된장찌개랑 제육볶음을 미리 해놓고,

설거지라도 하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면서 말리고,

나오지 말라고 해도 문밖에까지 나와서 끝까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들어가는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준비해 둔 반찬과 따뜻한 국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지, 살림은 잘하는지, 엄마 마음 졸이게 만드는,

너무 보고 싶어서 만날 날이 되면 문 밖에 나가 하루 종일 기다려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그런 귀하고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었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됐지.


그리고 그런 '딸로서의 자리'를 난 엄마가 너무 빨리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는 걸,

아니, 오히려 지금도 그 자리가 너무 커서 엄마의 엄마를 너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리가 결코 작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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