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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지링 Feb 04. 2024

Q5.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Q. 만약 엄마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16,17세일 거야.

지금도 그때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때가 있어.

사실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나의 신상이 탈탈 털리는구먼.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는 하고 싶은데 가정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집이지만 뒤뜰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몰래 울다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는데 지나가시며 하시는 말씀이 

공부는 잘하는데 가리킬 수가 없으니, 아이고... 하시더라고.

그때 후평동 공단에 독립문 메리야스 공장이 들어왔었지.

중학교를 졸업하면 갈 수 있는 곳이었고, 그 시절엔 고등학교에 못 간 친구들이 많았어.

그곳에서 만난 명희, 명순, 경연, 경림, 나.

이렇게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모두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었어.

우리는 어느 날 정보를 얻어가지고 그때 당시 '제일 강의록' 책을 구입해서 각자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지.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녁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어.

문답책이었는데 영어, 수학이 너무 어려운 거야.

기숙사에서는 이미 우리 방이 공부하는 방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서울 가면 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회사를 탈출해서 다 같이 서울 가서 공부하기로 합의를 보고 다음 날 춘천역에서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했어.

그리고 그날, 각자 자기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글쎄 저녁 퇴근 무렵 기숙사 사감선생님이 난리가 난 거야.

그중 명희라는 친구가 기숙사 담을 넘어서 약속을 지키려고 춘천역을 갔는데 혼자 갔었던 거지.

담을 넘느라 무릎이 피멍이 들었고 우리를 기다리다 지쳐 회사로 다시 돌아온 거였어.

그때 경비실도 비상이었고, 무서운 사감선생님에게 혼쭐도 났지만 그래도 모범생들이라고 격려를 해주신 덕에 무사히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지.

우린 6개월 정도 공부하다가 힘이 들어 모두 포기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됐어.

그때부터 항상 나의 맘속에 잠재되어 있는 공부의 한.

할 수만 있으면 난 그때의 10대로 돌아가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싶어.

나의 꿈이 선생님이었거든.

학창 시절 내게 선생님은 아주 훌륭해 보이셨고, 존경스러웠고, 멋지셨어.

작은 소녀의 마음속 우상이었지. 

한 때는 나도 공부만 잘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다 잊힐 거라 생각했는데 내 안에 늘 응어리처럼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어.

그래도 그동안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마음은 한껏 후련하네.

꽃 피우지 못한 나의 꿈. 아마도 평생 공부에 대한 꿈은 지울 수 없을 것 같아.



한 번도 엄마에게 엄마의 꿈은 뭐였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엄마의 꿈이 선생님이었다는 것도, 엄마가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다는 것도,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어.

엄마에게 다섯 번째 질문을 보내고 난 뒤 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 답을 난 이제야 찾았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공부를 포기해야 해서 집 뒤뜰에서 혼자 울던 엄마 옆에,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기숙사에서 열심히 문제집을 풀던 엄마 옆에 있을 거야. 

그 옆에서 엄마를 응원하고 엄마가 공부할 수 있도록 뭐든 다 돕고 싶어.


하지만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겠지?

그러니 엄마, 우리 지금부터, 여기에서 드라마를 쓰자.

내가 지금 여기에서, 엄마 옆에서, 엄마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자꾸 귀찮게 할게.

엄만 그게 무엇이됐든 다시 공부하고, 꿈을 꿔줘. 

엄마가 내게 그랬듯 이번엔 내가 응원하고 함께 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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