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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지링 Feb 19. 2024

Q6.80년대에 딸만 셋 낳은 종갓집맏며느리의 삶이란?

Q. 80년대에 딸만 셋 낳은 종갓집 맏며느리의 삶이란?


지난 불편했던 일들일랑 머릿속에서 다 지우리라, 

좋은 기억들만 생각하며 살자 마음먹은 나였는데 새삼 질문을 받고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한참을 울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축복받을 일인데 아들 낳아야 대우받고 딸을 낳으면 서러움을 당했던 그 시절이라... 

맏며느리인 건 알고 시집왔지만 결혼하고 보니 남편이 장손이었다. 첫아이는 유산이 됐고 그 이듬해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형광등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12시간 진통 후에 예쁜 첫 딸을 낳았다. 

그동안의 진통은 온데간데없고 신통방통 감동뿐이었다. 나는 마냥 좋은데 시어머니는 딸이라고 섭섭해하셨다. 마음속으론 '다음에 아들 낳으면 되지 뭐'싶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연년생으로 둘째 딸을 낳았다.

둘째를 낳고 나 자신이 미워서 펑펑 울었다.

똘똘하게 생긴 아이를 보니 참으로 고귀했다. 울고 있는 내 꼴이 아이한테 미안했다.

역시나 시어머니는 안색이 안 좋으셨다. 나도 불편했다. 당시 시어머니는 야채장사를 하셨는데 오는 손님마다 붙잡고 '며느리가 아들도 못 낳고 딸만 낳는다' 한탄한다는 얘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그때 난 미역국도 내 손으로 끓여 먹었다. 어느 날 작은 시어머니께서 소고기미역국을 한 냄비 끓여 오셨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4년 후, 춘천한약방에서 한약을 조제해 먹고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을 듣고 나도 그렇게 해 또 임신을 하게 되었다.

4개월쯤 되었을 때 아는 미용실 원장의 소개로 산부인과를 찾아 성별검사를 했는데 딸이라고 했다.

순간 앞이 캄캄했다.

그때는 어쩔까 저쩔까 하루 종일 생각했다. '오진이 아닐까? 임신한 내 몸을 보면 다들 아들 같다 하는데 남들이 날 위로하느라 그러나' 이런 생각만 들었다. 

내가 임신 후 아들 같다고 말하면 남편은 씨익 웃기만 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남편은 꿈에서 바지 속으로 실뱀 세 마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 나는 딸 셋을 낳으려나보다' 했다며 딸 낳아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88년 10월에 세 번째 딸을 낳았다. 

그땐 눈물도 안 나왔다. 옆에 누운 신생아는 너무도 또렷이 예뻤다. 남편도 속으로는 섭섭하겠지만 아이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며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이젠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섭섭해하셨던 마음을 나도 이해할 수가 있다.

당신의 큰아들이 손주를 낳아 어머님 품에 안겨드렸다면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사실 남편이 나 몰래 정관수술을 하고 시어머니에게 '나 수술했으니 아들 낳으라는 말 하지 마세요' 했을 때 나도 많이 섭섭했다. 아들 하나 꼭 낳으려 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 따라다니던 수식어, "딸만 셋이래."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언제부터인가 미련을 버리게 됐다. 

나름대로의 재능을 가지고 초등학교 때 미술, 글짓기, 작곡 대회들에 나가 상을 타오고 둘째 아이는 전교 어린이 회장도 했다. 이런 아이들이 나의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덕분에 난 신나게 학부모회도 참석하고 아이들을 위해 교통정리도 열심히 했다.

부모 마음 한번 아프게 안 하고 모두가 잘 성장했고, 진짜 열 아들 안 부럽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세 딸 모두 결혼해서 건강한 가정 이뤄 살고 있고,

첫째는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 곤하지만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훌륭하다.

둘째는 사회복지사로 사람들에게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차장님이고,

셋째는 방송작가 생활이 재밌고 행복하다는 작가님이다.

세 딸들 덕분에 난 지금 아주 행복하다고 자부하고 산다.

나의 세 딸들에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다. 

쓰리진 사랑해!




나를 낳자마자 아빠가 정관수술을 하러 갔다는 이야기는 우리 집에서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빠가 셋째도 딸이라 넷째까지 또 딸을 낳을까 봐 아주 싹을 자르려고 수술을 감행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글에 대해 엄마와 얘기하다 당시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니 아빠는 엄마가 '아들 낳아야 하니 넷째 가지라'는 말을 주변사람들에게 또 들을까 봐 수술을 했고, 수술 후 집에 들어오며 아들을 바라는 할머니에게 '애 엄마가 아기 낳는 기계도 아니고, 나 수술했으니 이제 그런 말 하지 말라'라고 했단다. 이전 글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한방이 있는 남자'라고 했는데 정말 아빠는 가끔 여심을 뒤흔드는 행동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아들 하는 세상에서 딸 셋을 낳아도 아쉬운 내색 한번 안 했던 것도 멋있고! 

그리고 엄마 글을 보며 한 가지 내가 또 놀란 건... 아빠가 정관수술을 했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아쉬워했다는 것!!! 정말 이 작업을 통해 엄마,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해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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