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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지링 Mar 03. 2024

Q7. 엄마의 아빠를 소개해줘

Q.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 엄마의 아빠를 나에게 소개해줘.


우리 아버지!

엄마는 많이 그리워했는데 아버지에겐 새삼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우리 아버지는 키카 크고 얼굴은 시원스럽게 생기셨다.

마을의 구장 일을 보셨어서(지금의 이장) 나는 '박구장님네 막내딸'로 불리었다.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론 옛날에 서당에서 매일 1등을 할 만큼 머리가 영특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참 좋아하셨고, 술을 드시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으며 소리도 잘 지르셔서 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연초가 되면 우리 집엔 토정비결 보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아버지에게 한 해의 운수를 보러 온 건데 오는 사람마다 담배나 술같이 먹을 걸 가지고 와서 차례를 기다렸다.

동네장사가 나면 초혼이라고 사람이 죽은 직후 영혼을 불러들이는 것도 하셨다.

집안일은 게으르셨는데 동네의 궂은일은 오랫동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어느 날은 아버지가 동네 친구분과 교실까지 찾아와 교실 뒤에서 딸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가셨다. 우리 아버지도 막내딸의 학교생활이 궁금하셨나 보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바지저고리를 입으셨고 할아버지 같으셨다.

중학교 시절에는 까만 단화가 신고 싶어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조건이 있다고 했다.

내 어깨에 소처럼 끈을 매고 아버지가 뒤에서 밀면 밭고랑이 파이는 거였는데 그 밭이 천평이나 되었다.

내 어깨는 파랗게 멍이 들었고 덕분에 난 까만 학생단화를 얻어 신었다.


처음 남편을 만나 아버지에게 소개했을 때 고작 하신 말씀이 '밥은 안 굶길 거라며 됐다'라고 했다.

결혼식장에서도 아버지는 바지저고리에 한복을 입으셨다.

막내딸까지 시집을 보낸 날, 아버지는 엄마에게 '이제 막내까지 무사히 결혼시켰으니 한시름 놓인다'라고 하셨단다.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이웃 상갓집을 다녀온 후 집에 오셔서 쓰러지셨는데 그 당시 얘기론 상문살이 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그 당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많이 슬펐었다.

그때 난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아버지에게 효도할 시간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막걸리도 사드리고 양복도 한번 해드리고 싶은데 마음만 간절하다.

아버지, 꿈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어요.

오늘 밤은 왠지 아버지를 만날 것만 같다.

그런다면 나의 아버지를 꽉 한번 안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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