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스물다섯 살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내가 스물다섯 살쯤엔 잘 나가는 직장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 연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커리어우먼은커녕 안정적이고 제대로 된 직장을 다시금 찾아 나서야 하는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스물다섯이었다. 4천 원짜리 싸구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이제는 부질없어진 지난날들의 망상을 논했다. 스물다섯이 되면 번듯한 직장이 있을 줄 알았고, 아주 부자는 아니더라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만큼의 일정한 수입이 있을 줄 알았고, 취업난 같은 건 머나먼 이야기 같았고. 초등학생 땐 의사가 되고 싶었고, 중학생 땐 작가가 되고 싶었고... 따위의 것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밀려드는 비참함에 나와 친구는 어느샌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세월 속에서 품었던 맹랑한 꿈들을 다시 상기해봤자 지금의 나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계약직이었다. 침묵을 유지하던 우리는 각자의 사무실로 돌아가 틈틈이 딴짓도 하면서 업무에 임했다. 모교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채용된 계약직임이 명백했다.
내가 생각한 스물다섯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훨씬 옛날에 생각했던 스물다섯은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내 망상 속 스물다섯은 한계가 없었다. 명확한 직장이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고, 사는 데 지장이 생길 거란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과 경험과의 만남으로 빈곤한 자아를 채워 어엿한 한 사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졸업한 모교로 다시 돌아와 일을 하며 내년을 걱정하는 스물다섯은 내 시나리오에 없었던 거다.
인생은 망상대로,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며칠 전 졸업을 코 앞에 두고 복학한 친구와 만났다. 나 스물다섯인데 진짜 철없다. 이제야 복학하는 자신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는 그녀를 보면서, 현재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는 건 나와 옆 사무실 친구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휴학 끝에 복학한 친구가 중학교 시절 품었던 스물다섯의 모습 또한 복학이 아니었을 터.
내 주위의 모든 스물다섯 살들을 있는 대로 꺼내 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취준생이거나 불안정했다. 바라지 않던 모습이 되어버린 그들과 나였다. 철없다는 단어로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친구가 안쓰러워 몇 마디 덧붙였다. 그 친구를 위해, 옆 사무실을 위해, 그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다들 그래. 초기 시놉시스대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빗겨 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스물다섯은 그 시나리오의 존재를 자각하는 나이일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이상한 것도, 철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슬퍼지니까, 그냥 그렇게 말했다.
퇴근하는 길에 돌연 내년의 내 모습에 대해 고민했다. 스물여섯의 나. 하루빨리 완전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나이를 먹는 것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수정 투성이의 시나리오를 받아 든 채 최선책을 찾아야 하는 시점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스물다섯 보다는 나은 스물여섯이 되어야 했다.
2016.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