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논리에 희생된 사람들
<엑스맨 시리즈>는 다수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 시리즈마다 특정되는 빌런이 있으며, 그 빌런이 간혹 자신들과 같은 돌연변이일 때도 있지만 ‘같은 ‘돌연변이’인 그들이 악당이 되고자 하는 이유도 어쨌든 다수의 논리에 지지 않기 위해서다. 엑스맨으로 대표되는 온건파와 악당을 자처하는 매그니토 무리-급진파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수에게 맞선다. 이 시리즈 속의 ‘다수’는 돌연변이가 아닌, (그들의 말에 따르면)평범한 인간을 뜻한다.
절대다수라는 이유만으로 ‘다수’의 범주에 들지 못한 사람들을 핍박하고 등한시하는 것은 단연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흑인 노예를 거느린 백인 민족들이 그랬고, 유대인들을 핍박한 나치가 그러했으며, 다수의 논리가 지워지지 못한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등의 만행 따위를 여전히 자행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다수들의 논리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엑스맨 시리즈>는 그 다수의 손아귀에 쥐어진 세상을 판타지적 서사를 통해 비판한다.
<엑스맨 시리즈>의 평행세계 격인 <로건>의 세상 또한 다수의 논리에서 예외는 되지 못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가 자신들을 혐오하는 다수들에 맞서는 이야기인데 반해, <로건>은 다수들에게 철저히 전복되어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로건>의 세상에선 돌연변이는 한물가도 한참 간 토픽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자 개조 식품 개발에 성공한 다수들로 인해 돌연변이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그마저 남아있던 돌연변이 마저 (유전자 개조 식품 때문인지) 사라졌다. 쇠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무엇이든 얼려버리는 것도 모자라 레이저를 뿜고 사람 속까지 읽어대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저 자’들을 다수의 논리대로 아주 합당하게 없애버린 세상이 바로 <로건>의 세상이다. 그토록 부정하던 다수의 논리가 통용되어버린 잔인한 세상 속에서 로건과 로라가 만난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웨스트체스터 사건을 계기로 울버린-로건은 찰스와 덩그러니 남겨지고 만다. 칼리반에게 찰스의 신변을 맡겨놓고는 언젠가 요트 위에서 죽으리란 꿈을 이루기 위해 콜 리무진-대리 운전을 뛰며 살아간다. 죽기 위해 살아가는 것. 함께 힘을 합쳐 세상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할 동료도 없고, 누구보다 세상을 위하고 돌연변이를 위했던 찰스 마저 ‘세상을 위협하는 위험한 뇌’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 오직 그것만이 남겨진 사람의 목적이다. 다수가 원했던 대로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남겨진 로건은 남은 로라를 만난다. 자신의 유전자를 이식받아 살인 병기로서 키워질 예정이었던 X-23.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 더 훌륭한 살인 병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순식간에 가치를 잃고, 폐기라도 하듯 처리해 버리는 군인들을 피해 도망쳐 온 아이. 살아서 남아 끝까지 살아남기로 한 아이들 중 한 명.
만들어진 사람, 그리고 아다만티움. 자신과 닮은 점이 많은 로라와 동행하면서부터 로건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살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로라를 군대에 넘기기는커녕 보호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로라를 살리는 것이 로건이 사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놈들의 뜻대로 살지 마.
아이들과 로라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로건은 아버지로서, 그리고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으로서 진심 어린 유언을 남긴다. 너를 만들어낸 다수의 뜻대로 살지 말라고.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사람’인 로건의 긴 인생 또한 다수의 뜻대로 살지 않은 삶이었으니까. 다수에게 전복 당하 다간 언젠가는 나의 존재도, 정체성도 상실하기 십상이기에. 2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남겨지고 남겨지면서 내린 로건의 결론이다.
그리고 로라는 남은 사람에서 남겨진 사람이 된다. 남겨진 자의, 다수에 굴하지 못하는 자의 의지를 완벽하게 이어받은 로라의 삶은 어떻게 이어질까. 아빠의 말처럼, 세상을 제 손아귀에 쥔 다수에게 전복당하지 않는 삶이 되기를 바라본다. 다수가 자아낸, 어마어마하게 굵직한 논리들만이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은 내가 밟고 있는 이 세상 하나만으로도 족하므로.
실체 조차 명확하지 않은 다수가 세상 깊숙이 침투하여 자신들의 논리와 상식을 견고히 심어버린 이 현실 세상에서, 누구나 ‘돌연변이’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놈들의 뜻대로 살지 않기. 어려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