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생애 첫 해외여행이 이루어졌다.
내가 다니던 일본어 과에서는 여름방학마다 해외 연수를 갔는데, 연수에도 두 종류가 있었다. 일본 큐슈에 위치한 전통 료칸에서 2주간 경험을 쌓는 코스가 그중 하나였으며, 하나는 일본 나가노의 한 고원에 있는 리조트에서 방학 내내(어쩌면 방학 지나서까지도) 죽어라 일하는 코스가 나머지 하나였다. 후자, 일명 나가노 연수에 대한 소문은 당시 아싸 축에 속했던 나에게까지 들려올 정도로 그 악명이 자자했다. 새벽 네다섯 시부터 일어나 육체노동을 한다, 잠잘 시간은 없다고 봐도 좋다, 사람을 아주 기계처럼 굴린다 등등. 어학연수가 아니라 팔려간다고 봐도 무방한 소문들에 겁을 먹은 1학년 신입생들은 당연히 나가노가 아닌 규슈를 선택했다.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필수적으로 참가를 유도하는 학과 연수였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거라면 몸이라도 덜 힘든 곳을 가자. 모두들 그런 생각이었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희망 조사표에 규슈를 써넣고는 만족스레 강의실을 나섰다. 2주 동안 지내게 될, 더군다나 처음으로 발을 딛는 해외인 일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나가노에 갔다.
방학 중 걸려 온 학과장 교수님의 전화 한 통에 운명이 뒤틀린 것이었다. 교수님은 규슈가 아닌 나가노를 권장했다. 나가노에 가는 인원을 채우려는 심산이 뻔히 보였다. 그 속셈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머뭇거리는 척하며 대답을 미루고 있자, 교수님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나가노 가면 일본 사람들하고 일하기 때문에 공부도 많이 될 거고… 연수할 리조트 가기 전에 도쿄에서 2박 3일 자유여행도 할 건데, 나가노 가는 게 안 낫겠나.”
2박 3일 자유여행.
이 한 문장에 나는 단번에 태세를 전환했다.
그 길로 서점에 가 도쿄 여행 가이드 북을 샀다. 가이드 북을 훑으며 돌아오는 길엔 설렘이 넘쳤다. 미디어에서만볼 수 있었던 도시인 도쿄가 늘 궁금했고, 태어나서 처음 겪을 해외여행이었다. 설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책이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신주쿠와 하라주쿠. 도쿄타워가 빛나는 도쿄의 야경을 몸소 느낄 그 날만을 고대했다.
출국 당일. 나는 처음 해외로 향하는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창가 쪽에 앉아 구름 사진만 수 십장을 찍어댔고, 틈틈이 가이드북을 보며 접어놓은 책 귀퉁이 아래의 내용들을 찬찬히 곱씹었다. 앞으로 내 가발 딛게 될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2.
같은 모양의 도시여도, 간판 속 언어 하나만으로 인상을 달리 할 수 있다.
서울의 큰 도시까지는 아니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수 없이 많은 도시를 보아 왔는데도, 간판의 언어가 다른 도시는 영 낯설게만 다가왔다. 공항을 나와 신오오쿠보의 숙소로 향하는 내내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핥았다. 도시 위를 수놓은 외국제 간판과, 간혹 사람들이 뱉어내는 언어만으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언어라는 건 신기했다. 지금 막 이 땅을 밟은 나에게, 도시는 더 이상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예정대로 움직이려 하는 순간, 동기 두 명이 다가왔다. 같은 학번의 동기임에도 1학기 내내 한 문장도 채 나눠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OO아, 어디로 갈 거야?”
“그냥… 여기 근처 돌아다닐 생각인데…”
신주쿠가 코 앞이었으니 근처는 근처였다. 넓디넓은 신주쿠 시내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그럼 우리도 같이 다니면 안 돼?”
말하자면 도착지점을 뚜렷하게 정해놓은 여행은 아닌 것이다. 도쿄 여행 가이드북을 사서 볼 때부터 혼자 다니고 싶었던 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시내를 돌아다닐 거라고, 나랑 다녀봤자 하나도 재미없을 거라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지만 동기 둘은 한사코 거절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동기 언니가 있는데도 왜 하필이면 나와 다니려고 했는지 그때도,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친해지는 것이 목표였다면 끝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그것도 답은 아닌 듯하다.
결국 같이 다니기로 합의를 보고는, 더 늦기 전에 숙소를 나섰다. 입구에서는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남자 동기와 마주쳤다.
“너희 어디가? 혼자 다니기 좀 그래서 그런데 나도 같이 가면 안돼?”
그렇게 일행이 또 늘고 말았다. 혼자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려던 계획은 펼치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여럿이면 여럿인 대로 재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친하지 않은 동기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난생처음 오는 외국에서 나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신주쿠에 다다른 우리는 눈에 보이는 큰 건물이란 건물엔 다 들어갔다. 한국에 있는 것과 똑 닮은 백화점이어도 외국에 있는 건 다 신기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백화점을 보는 것 마냥, 촌티란 촌티는 죄다 드러내면서 다녔다.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써의 가오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시내를 구경하는 틈틈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기들의 얼굴을 살피기도 했다. 동기 두 명 또한 나처럼 일본이 처음이었기에, 다니는 곳곳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마침 아이쇼핑도 좋아했던 두 사람에 비해 남자 동기의 표정엔 잔잔한 변화조차 없었다.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난생처음 걸어보는 타국의 길 위에서 나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평소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사 먹지 않았을 과일꼬치를 길 한 구석에서 먹고 있는데, 남자 동기가 돌연 서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 가냐고 말도 붙이기 전에 훌쩍.
그리고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남자 동기를 기다렸다.
썩 친하지 않은 사람 들과, 습기와 열기가 얽힌 일본의 한 복판에서, 과일즙으로 끈적해진 손을 씻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척 지치는 일이다. 두 명의 동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고, 나는 초조하게 발만 구르며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걸어댔다(국제전화 이용료 같은 걸 챙길 만큼의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나였다면 당장 버리고 떠났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융통성이라곤 제로에 가까웠기에 그냥 두고 가자는 두 명의 말에도 고개를 저어가며 전화만 걸어댔었다. 다 함께 움직였던 몇 시간 동안 연대와 단체의식이라도 생긴 모양인지, 두 사람은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옆을 꿋꿋이 지켰다(지금 생각해 보니 참 미안하고 고맙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팀이었고, 나는 나 스스로를 이 팀의 리더로 여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어깨엔 책임감이란 게 있었다. 남자 동기를 두고 가자니 연락 조차 되지 않는 그 애가 걱정되었고, 두 사람만 따로 보내자니 언어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그 애들이 물 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마냥 느껴졌다. 혼자 다니겠다던 포부는 진작에 사라졌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가 열 번째를 넘겼을까.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또 한 번 통화 버튼을 누르자, 남자 동기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니 어딘데?!”
“미안, 나 구경하느라 전화 온 줄도 몰랐다.”
“아 그래서니 지금 어딘데. 니 때문에 지금 애들이랑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나 아직 서점인데…”
“어디 서점? 이 쪽으로 오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어… 근데 나 아직 볼게 좀 남았는데. 그냥 너네끼리 다녀야겠다. 미안하다.”
나는 화가 나서 전화를 끊었다.
신주쿠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은 우리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한 시간 동안 온갖 걱정으로 기운이란 기운은 다 뺀 나는 더 이상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으며, 두 사람도 하고 싶은 게 생긴 모양인지 흔쾌히 제 길을 찾아 떠났다. 그 애들을 더 붙잡아 놓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숙소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과일 꼬치 매대 옆에서 헤어졌다. 시간은 이미 저녁에 들어서고 있었다. 2박 3일 중 하루가 허무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돌아다니려 했던 나의 원대한 계획은 무너졌고, 기대에 가득 차서 산 도쿄 가이드북만이 무색하게 남았다.
숙소에 돌아온 남자 애를 보자마자 (때리고 싶었지만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하소연을 했다. 못 오면 못 온다고 연락이라도 주지 그랬냐. 전화는 대체 왜 안 받았냐. 우리가 얼마나 너를 걱정하고 기다렸는지 알기는 아냐. 남자 애 또한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정신이 나가고 말았단다. 다음 날 아침, 나에게 밥 한 끼를 사면서 그 애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싹싹 비는 그 애와 밥을 먹는 시간은, 사람이라곤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초중고등학교에 갇혀 지냈던 내겐 인간에의 고찰을 짚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본인 일에 눈이 멀어 남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사람과 얽히면 피곤해지기만 할 뿐이라는 걸 성인이 되어 처음 깨달았고, 융통성이라곤 한 티끌도 찾아보기 힘든 나는 누군가를 이끌만한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나의 첫 해외는, 처음 깨달은 것들로 수북이 쌓여있는. 경험의 집합체다.
단단히 준비했던 나의 하루를 호되게 만든 사람과 깊이 지낸 것 또한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그 남자 애와 연애도 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