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가를 좋아하고 매일을 함께 하지만 요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선명한 답변을 그리기가 어려웠다. 요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만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바로 요가 디피카를 펼쳤다.
요가에 대한 다양한 표현과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하나의 뜻을 품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결합 또는 조절
다양한 표현들을 보면서 스스로 간단하게 정의를 해봤다.
육체 운동의 너머를 지나 내면의 조절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
생각보다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디피카에서 만난 구절 중 마음 위에 가장 오래 앉은 구절을 통해 다시 한번 정의를 해보고자 한다.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그 자체가 은전이며 특권이므로,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결단코 일을 멈추지 말 것이며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신의 이름으로 일하라. 성공이나 실패에 구애받지마라. 이러한 마음의 안정 상태를 요가라 한다.”
“요가는 너무 먹거나 또는 전혀 안 먹는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또 너무 많이 잠을 자거나 전혀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다. 먹고 휴식을 취하는 데 있어서의 절제와 일을 함에 있어서의 조절 그리고 잠자고 깨는데 있어서의 조화로 요가는 모든 고통과 비애를 없애 준다.
수련할 때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야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당시 나는 이 말을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지속과 중단을 결정하지 말라는 말로 해석했다. 여기서 어떤 한 부분을 잘라내고 나머지에 동의했다. 내 수련에 있어서는 기분과 감정 위에서 수련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상태에 맞는 수련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아픈데 꼭 해야할까? 요가가 몸에 좋은게 맞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질문들을 머리에 싸매고 다녔다. 내가 품은 질문들을 주변에 꺼내어 놓아도 선명한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아픈데도 왜 수련을 멈추지 말라고 하는 걸까. 한동안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수련을 계속하는 것에 있어 회의가 짙었다. 어떤 때는 최선보다 게으름과 회피를 꺼내 매트 위에 올려둔 적도 많았다.
한참 요가에 권태롭던 시기가 이어질쯤 누군가 이런 조언을 건네 주었다.
“요가를 한다고 모두가 아프진 않아. 그 이유를 찾아서 해결을 해 봐. 선생님한테 질문도 하고”
이유를 찾아보라는 말을 듣고 내가 가진 경험 하나로 한 세계를 제멋대로 해석한 것 같아 머쓱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께 궁금한 것들과 통증, 부상에 대해 질문을 많이했다. 선생님은 나의 체형과 그에 맞는 수련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체형상 특징이 각자 다른데 같은 방법으로 수련을 하게 되면 몸에 무리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수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정성껏 알려주셨다. 실제로 그 방법대로 수련을 계속 이어가자 더이상 허리에 통증이 생기지 않았다.
이때 몸을 잘 살피고 느린 한 걸음이더라도수련의 방향을 잘 정해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작을 만들어내는 것, 즉 결과에만 집중을 하면 성공과 실패 두 가지 궤도에서 기계적인 움직임만 반복될 뿐이었다. 뭔가를 빠르게 이루고 싶다는 소망 자체는 매트 아래에 묻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매트 위에 서있는 지금의 나를 살피며 수련을 이어가야한다. 이후로 몸이 열린다는 느낌을 작은 손틈새만큼 느낄 수 있었다.
몸의 정렬이 바르게 잘 되면서부터 마음 주위의 삐죽한 것들도 균형있게 맞춰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절제와 조화를 이루는 것에 집중했다. 밥을 많이 먹는 것과 굶는 것, 수면의 양, 수축과 이완 등 양극단의 성질을 어떻게 조절할지 생각했다. 맛있는 것을 배에 가득찰 때까지 먹지 않기, 하지만 영양이 바닥이 날정도로 굶지는 말기. 피곤함을 수면으로 채울 때는 적절한 양을 조절하기 등 일상에서 나에게 맞는 조화로운 지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몸과 마음에 절제와 조화를 입혀내면서 평온한 상태가 자주 찾아왔다. 마음 위에 눌러붙어 떨어지지 않던 것들도 조금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요가 수련은 몸의 움직임을 지나 마음의 자세와 자리도 정돈시켜낸다. 그리고 그것은 매트를 넘어서 일상 곳곳에서도 호흡처럼 유지되고 있다. 사실 아직은 요가는 무엇이다라고 완벽한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리고 매트가 해지는 단계에 온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이 한 곳으로 쏠려 중심이 무너질 때 요가를 하면 기울어진 중심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믿음 덕분에 삶의 한 부분이 쓸려나가더라도 다시 조절할 용기를 손에 담을 수 있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때로는 슬픔을, 후회를 기쁨을 불러오지만 요가를 통해 한 곳에 머물지 않게 잘 흘려내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이렇게 요가에 기대어 살다보면 내가 가진 질문에 조금씩 답을 꺼내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고 기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