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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모두의 언니 Jun 20. 2023

결코, 가벼워 질 수 없는 프레임

동생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나아야 우리는 어제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했는데, 내가 먼저 잠들고 난 후 글을 쓴 것 같구나. 대단하다 많이 피곤했을텐데, 멋져! 평소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는 내게 어젯밤은 하룻밤의 일탈 같았어. 새벽 2시에 잤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미국에 와서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놀아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

Cape Cod AutoCamp 1박 2일

 어제 우리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 아침에 일어나 혼자 산책하며 어제 슬그머니 올라온 취기에 서슴없이 얘기했던 내 속마음에 대한 생각을 해봤어.


 최근 들어 내가 왜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만남을 주선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자문해보니 문득 깨닫음이 생기더라.


어쩌면 내가 ‘모든 것을 오픈하고 나눌 수 있는, 나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 최근들어 미국 생활이 꽤나 외로워졌었나봐. 그리고 더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에게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언니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





 나아도 알다시피 나는 스스로에게 ‘방랑하는 언니’라는 프레임을 씌우고(심지어 유튜브 이름도 "방랑하는 언니 외국생활기"잖니) , 실제로도 많은 모임 자리에서 언니라는 호칭을 들을 때가 참 많았어. 미국에 오는 사람들 중에 30대 중반이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나봐! 그런데 이건 비밀인데 말야, 나는 내가 언니인게 별로 좋지 않아. 진짜 이상한 말이지?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별칭을 써놓고 실은 그게 싫었다니 말야.


Cape Cod AutoCamp 라운지

  그 동안 그 누구에게도 내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던 것도 언니는 그래야하니까, 언니는 좀 더 생각이 깊어야 하고, 조금 더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조금 더 지혜로워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감이 있었던 거지.


그게 바로 어젯밤에 무장해제 된 거였고.


 실은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철없는 이야기도 던져보고 싶어. 주위 사람들보다 내 남은 인생에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한편으론 별 생각없이 대화하며 꺄르르 웃어보고 싶어. 그래서 요즘 그렇게 사람을 찾아 다녔나 봐.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그런데 말이지, 지금 내 마음에 잔잔하게 들려오는 대답이 뭔지알아?


 나에게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만나려고 체력과 감정 소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상처를 받는 것보다 나에게 진짜 완벽하게 맞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더 탐색하며 내가 나에게 완벽한 주인이 되어야 겠다는 거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좋은 책과 영화를 보고,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생각을 하며 내 인생과 스스로에 대해 계속해서 반추해보는 것. 또 반 년 정도 지나면 결심이 흐릿해져서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보스턴으로 돌아간다면 한동안은 오늘 했던 결연한 다짐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 교환일기를 쓰면서 좋은 책, 영화, 장소에 가며 여러가지 생각들을 나눠보고 감정을 적어보도록 할게. 미국이란 낯선 곳에서 30대 중반이 넘어가며 나는 과연 무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 황금시기는 한 번 쯤은 있어야 하는거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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