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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모두의 언니 Jul 28. 2023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티켓 하우스

동생에게 보내는 스물한 번째 편지


나아도 책방에서 힐링하는구나! 이거 정말 반가운 소식일걸? 나야말로 책들이 모여있는 곳 특유의 그 온기와 아늑함을 찐사랑 하는 사람이야. 심지어 옛날에는 조그만 북스테이를 엄마와 함께 잠깐 운영하기도 했다는 거 아니겠니! 둘이 책방 투어 자주 다니자. 어제 산 책들을 보니 일러스트 관련책, 동화책, 그리고 Over Thinking에 관한 책도 있는 것 같네. 요즘 나아가 관심 있는 것들이 어떤 건지 알기에 사 온 책들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어. 너무 귀여운 나아. 컨디션은 좀 어때? 얼른 회복하길 진심으로 바랄게!




 미국에서 살았던 첫 집, 서블렛 기간도 끝나고 정말 이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야 말았어. 시간이 어쩜 그렇게 후다닥 지나가는지 몰라. 첫 번째 이사 때는 침대, 화장대, 책상 등을 두고 왔기 때문에 이 집과 헤어진다는 감정보다는 새 집에서의 새 출발에 더 집중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막상 모든 짐을 다 빼고 나니 이민가방 2개, 캐리어 2개 만을 가지고 맨 처음 미국에 왔던 때가 생각나더라. 가구도 가전도 없이, 짐 4개 그리고 건강한 우리 부부, 이게 끝이었어.


 아무것도 없어서 맨바닥에서 서로 팔베개 해주고 껴안고 잤던 기억, 식탁이 없어서 캐리어 위에서 밥 먹었던 기억, 옷장이 없어서 쌓아놓고 입었으며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서로 조심하며 지냈던 기억들. 이 집 월세가 지금 $3,200이라니까 월 400만 원을 내고 산다는 건데, 어마무시한 보스턴 물가야. 그렇지?

미국 첫 집과 마지막 인사를 해(좌), TV까지 갖춰지니 그럴싸한 집이 완성됐어! 둘만의 이사 뒷풀이 모습(우)

이사하는 날, 때맞춰 TV 중고거래를 할 수 있어서 낑낑대며 둘이 가져왔어. 셀프이사 정말 쉽지 않더라. 그냥 사람 불러서 하자는 말에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하루종일 참을성 있게 일을 해낸 남편을 보며, 내가 어디서 이렇게 알뜰하고 괜찮을 사람을 골랐지? 하는 생각이 들어 "여보한테 오늘 한 번 더 반했어, 고마워" 하고 꽉 껴안아줬어. 그랬더니 남편은 왜 이러냐며 질색하는 반응이었지만, 내심 좋아하는 모습이야. 



새로운 공간에서 루틴이 생기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까?



 이미 예전 집에 맞춰 루틴이 만들어진 상태였는데, 새로운 집에 오니 낯을 가리는 건지 그 루틴이 바로 안되더라.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공간의 힘을 믿고 있던 나에게 엉망이 된 것 같은 생활 루틴은 여러 가지 의문을 던지게 했어. 

 

 이사오기 전 내 루틴은 새벽 기상 후 글쓰기와 독서, 요리 후 남편 깨우고 같이 아침식사, 조금 쉬다가 도서관에 영어 수업에 들어가고 점심 먹은 후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곳에 가거나, 모임, 운동을 했어. 지칠 때면 집에서 쉬었고.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나만의 공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기상도 거의 못하고, 요리도 대충 간단한 것만 하게 되더라. 열흘 가까이 영어수업도 거의 다 빠졌고, 브이로그 영상도 올리지 않았어. 엘보우 때문에 테니스는커녕 수영도 안 갔고. 집 정리를 한다는 변명 아래 늘어져 있고, 늘어지다 보니 잠이 안 와 술을 마시게 되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살만 찐 것 같아. 딱 2주가 지나고 남긴 물건들을 가져와 완전체의 집이 만들어지니 그때서야 아! 이러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며 위기감을 느꼈어. 


 나에게 새로운 공간과 친해질 시간은 2주 정도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어.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인데, 앞으로는 새로운 공간에 가면 2주 정도는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려고 해. 그때는 집 꾸미고 쉬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줄 거야! 그러면 새로운 변화에 맞춰 어느샌가 루틴을 만들고 있겠지?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새로운 직장을 가져도 얼마간의 적응할 시간은 필요해. 하지만 나는 그런 시간은 늘 무시하며 조급하게 살았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와 더불어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두 번째 화살을 스스로 맞고 있었던 거지. "그러려니" 하고 시간을 보내면 알아서 적응할 텐데 말이야.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서의 과거 영광의 기록은 쓸쓸함과 비례한다


 최근 신규로 발급받은 여권을 가지러 보스턴 영사관에 다녀왔어. 날이 좋아 최대한 걸을 만큼 걷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어. 올스턴('보스턴의 한인 타운'이라고 불리는 곳) 모퉁이를 지나가는데 티켓 판매점과 문 닫은 식당들,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아파트가 보였어.


올스턴 모퉁이에 있던 티켓 하우스(좌), 사람이 살지 않는 옛날 아파트(우)


 검색해 보니 티켓 하우스는 영화, 스포츠 경기, 콘서트 등의 티켓 구매를 대행해 주는 곳이고 아직도 영업을 한다고 해.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인적도 없고, 무덤덤하게 옛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어.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티켓 구매를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할 테니,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많이 없을 것 같아. 주변 식당들도 문을 닫은 상태인 걸로 추정하건대, 일자리가 사라지고 편의성이 사라지니 사람들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폐허가 된 아파트만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한 때 이곳은 엄청 부흥했겠지? 많은 사람들이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바글대며 소리치고 했을 것 같아. 덩그러니 남아있는 옛 영광의 기록은 남아있는 이들에게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힘이 있나 봐. 특히, 과거 영광의 기록이 더 반짝일수록 지금은 더 쓸쓸하겠지.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나도 20대 때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주고, 쉴 새 없이 연락도 오곤 했어.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안정적인 모습이지만, 한편으론 큰 인기도 없는 상태 같다는 느낌이 들어. 점점 더 나이가 들고, 더 이상 나를 찾아주는 이가 없다면 내 모습도 많이 쓸쓸해지려나, 하는 생각에 인생무상을 느끼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지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으니 어쩌면 노년의 내 모습은 고즈넉한 한옥의 매력을 띠고 있진 않을까 살짝 기대도 걸어봐!


 


 

  이제 다시 새로운 곳에서의 내 루틴을 지키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 볼게. 우리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만 말자. (내가 늘 하는 얘기지?) 새로운 곳에서 나아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지금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찰스타운을 지나며 동화책 속에 나올법할 모습을 찍어봤어. 사진이 현실을 100%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네. 그래도 언젠가 나아의 그림책에 이 것과 비슷한 배경이 나와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넣어볼게! 오늘은 더 편안한 하루가 되길 :)


찰스타운에 흐르는 강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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