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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l 28. 2023

나 홀로 책방 데이트 성공

언니에게 보내는 스물한 번째 편지

일상을 조금 더 다채롭게 경험하고 그 안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해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언니의 편지를 읽으며 내심 다시 깨닫게 된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시간 속에 내가 설레는 일을 찾는 것 그게 참 중요한 것 같아. 취향이 확실한 언니를 보니 왠지 멋있어! 나도 서서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는 유난히 몸의 컨디션이나 그날의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이번 주는 저조한 컨디션을 핑계 삼아 집에서 쉬려 했어. 근데 참 이상하게 집에만 있으니 점점 몸도 기분도 처지더라. 괜히 그 시간 동안 끝도 없이 잡생각을 하고 한참을 숏츠 영상들을 보며 말 그대로 의미 없이 시간을 때웠어. 그랬더니 예상하겠지만 괜히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더라고.


책인가 유튜브였나 기억도 안 나지만,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을 땐 일단 움직이라고.

끊임없이 생각만 하다 보면 몸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뇌에서 다 소진시켜 버린다고.


이번주 초부터 계획만 하고 미룬 일들을 나열하자면 정말 끝도 없지, 의지박약 J 계획형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무기력이 지속되면 끝없이 우울해지기 시작할 거란 걸 알아서일까, 오늘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생각할 겨를도 안 준 체로 밖으로 나갔어. 기분과 상관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요 며칠 미뤘던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겠다는 마음으로 막상 세탁물을 픽업하고 장을 보러 가기 전에 문뜩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환기를 시키자


말 그대로의 환기 말고 내 머릿속의 환기. 그래서 무작정 지도 앱을 켜고 잠깐 생각했어.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면 내가 나를 환기시켜 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데려갔을 때 좋아할 곳이 어디일까. 조금 재미없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근처 "Barnes and Noble"에 갔어.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같은 곳이야.


내가 책방을 가는 이유는 책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 보다 책방의 분위기와 숨겨진 재미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해. 과도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을 때 마음을 진정시킴과 동시에 보물찾기 하듯 그 순간에 몰입하게 해 주거든.


한국의 교보문고처럼, Barnes and Noble은 큰 규모의 책방 안에 카페까지 딸려있어. 날듯 말 듯 나는 책 냄새와 커피의 잔잔한 향이 벤 그곳은 묘하게 날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 책보다는 책 커버나 삽화를 구경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보기 좋게 진열돼 있는 문구류나 굿즈들을 보는 것도 즐거워. 그리고 내가 쓸 그림책도 언젠가 이 큰 서점 어느 작은 한편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고!


현지 분위기를 물씬 담은 책들과 굿즈들
흑인 인어공주 인형 그리고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책들

장보기를 뒤로 한 채 한참을 서점 안에서 책들 들춰보고 귀여운 물건들을 한 번씩 들여보다 보니, 요 며칠 가라앉았던 기분들이 다시 환기되는 느낌이었어. 내가 좋아하는 곳에 잘 왔구나, 나 홀로 데이트가 성공했구나 싶었어. 뭐든 의미부여 잘하는 나로서는 뭔가 내가 나 스스로를 알아주고 대접하는 기분이었어.


누군가에게는 힐링의 장소가 자연일 수도, 혹은 반대로 밤낮 모르게 반짝이는 도심 어딘가 일수도 있겠지. 나한테는 책방이 그런 곳이야. 생각해 보니 이사 오고 나서 온전히 나 혼자 보낸 시간이 없었더라고.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을 표현해 주지 못했던 요즘을 반성하게 됐어. 사소해도 좋으니 개인의 취향이 깃든 것들을 찾아 인생의 치트키처럼 가지고 있으면, 이유 없이 불안한 순간마다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앞으로 찾게 되는 내 취향들 종종 편지로 전할게!


다행히도 야속하게도 기분과 상관없이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다시 주말이야. 이번 주말도 우리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것들로 잘 채워보자 :)

오늘 나와 함께 집에 온 친구들을 소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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