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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모두의 언니 Jul 24. 2023

한국에 평생 살았다면 몰랐을 미국의 진짜 모습들

동생에게 보내는 스무 번째 편지


사춘기, 사랑의 열병 그리고 지금 나아가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모든 것들. 왜 그런 말이 있잖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밖에서 알을 깨면 계란프라이가 되지만 안에서 깨고 나오면 새가 탄생한다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불안한 것도 뭔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시기를 승화의 과정으로 원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도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새가 되리라 확신해! 





 그동안 조금 무거운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아서 오늘은 최근 들어 경험한 "진짜" 미국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 여행자 말고 거주민으로서 미국을 느꼈던 시간들 말이야.



 미국의 수산시장



 Boston Fish Pier라고 하는 동부의 대표적인 수산물 도매시장에 다녀왔어. 여러 시장 중에서도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크며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장이라고 해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 같아.

Boston Fish Pier(좌), 100년이 넘은 수산물 시장이었네(우)


기다란 건물 두 동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건물 한 동이 있었어. 조그만 건물에서는 경매시장이 열렸던 것 같은데 물어보니 최근에는 파티홀 대여로 많이 사용된다고 하더라. 더 이상 경매 시장은 안 열리냐고 물어봤는데, 내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인지 그런 건 요즘에 없다고 했어. 


출처 : 위키백과 "노량진 수산시장" 대표 사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완전 해산물 킬러거든. 그래서 요즘 소원이 있다면 광어와 우럭 모둠회 한 접시 거하게 먹는 거야. 너무 먹고 싶어. 


 당연히 우리나라 수산시장처럼 싱싱한 생선을 사고팔고 하는 곳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 시장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식당이나 회사와 "거래"를 하는 오피스 느낌이 강하더라. 고깃배가 들어와서 간단하게 분류한 후, 각 오피스 내에 있는 공장 시스템으로 고기 손질과 패킹까지 하는 것으로 보였어. 한 낮 시간이었음에도 손님으로 그곳을 찾은 건 나까지 포함해 2~3명 밖에 없는 것 같았고. 


 또 다른 점은 우리나라처럼 활어회로 팔지 않고 대부분 Seafood로 가공을 해서 파는 것이었어. 이곳의 사람들은 활어회를 잘 먹지 않나 봐. 그런데 랍스터가 아주 흔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식재료인데 여기 수산시장에서는 팔딱팔딱 뛰는 랍스터들을 쉽게 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 바다에서 잡히는 수산물들의 종류가 다른 것도 한국하고 많이 다른 점인 것 같아. 



수산물 경매시장이 열렸던 모습(좌), 갓 들어온 고기배에서 내린 생선을 분류하는 모습(우)


 마지막은 분위기였어. 갓 들어온 배에서 올라오는 고기들을 분류 작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이나 에스파뇰들이었어. 그들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던 것 같아. 웬 아시아에서 온 조그만 여자 한 명이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얼마나 재밌었겠어? 나를 쳐다보면서 거친 표현을 하고 자기들끼리 웃는데, 너무 무섭더라. 바다 사람은 거칠다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울려 퍼졌어. 배 사이즈도 엄청 컸고, 고기를 담아내기 위해 설치된 여러 장치들이 무시무시했어. 단순히 한국 수산물 시장과 맛있는 활어회만 생각했던 나 스스로가 철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니까. 다시는 혼자 이런 곳에 가지 않으려고.



미국 뒷마당 바겐 세일



 최근 이사 온 곳 동네 산책을 하다가 "Yard Sale"이라고 붙어있는 종이를 봤어. Garage Sale이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미국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뒷마당 장터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출발했어.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라 즐겁게 구경했던 것 같아.


Yard Sald 알림문(좌), Yard Sale 모습(우)


 여자 셋이 살다가 뿔뿔이 흩어져 다른 주로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이 짐들을 처분하려고 Sale을 하는 거래. 우리나라 같으면 중고앱으로 팔거나 지인에게 나누거나 할 것 같은데, 집 바로 앞에서 벼룩시장을 열고 거래를 한다는 개념이 흥미로웠어. 여기서 옷 8벌에 조그만 액자 2개를 구매했는데 $50도 안 나왔단 거 아니겠니! 물가 비싼 동네에서 이 정도면 완전 땡큐지.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공고문도, 그리고 거래 자체도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느낌이야. 미국에서 살다 보면 우리나라의 디지털 문화는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는데, 이 날도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촌스러운 사람인지라 직접 종이에 프린트해서 공고문을 붙이고, 집 앞에서 물건을 쌓아놓고 거래하는 이런 문화가 너무 좋아. 사람 사는 냄새난다고 하면 맞으려나.




 이사오기 전엔 올 옵션 신축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전자레인지, 에어컨부터 세탁기까지 다 포함되어 있었어. 그런데 미국식 하우스로 이사를 오니 세탁기도 없고,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에어컨 등등 옵션으로 포함된 가전이 거의 없더라.


그래서 창문형 에어컨을 중고로 구매해 직접 달고, 전자레인지 말고 가스레인지로 요리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있어. 하루하루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식기세척기 대신 손 설거지를 하는데, 할 땐 귀찮아도 깨끗해진 주방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그중에서도 가장 미국 스럽다고 생각한 건 세탁실이었어. 특히 보스턴은 옛날에 지어져서 오래된 집들이 많거든. 당연히 세탁기가 들어올 배수 시스템이나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 세탁실을 많이들 이용하는 것 같아. 

세탁실(좌), 세탁실을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길(우)


 처음에는 이런 과정들이 귀찮기도 하고, 싫은 마음도 있었는데 요즘엔 세탁하러 가는 길이 너무 좋아. 가는 길에 새소리도 듣고, 따사로운 햇살도 즐길 수 있거든. 아 이게 리얼 미국 생활이구나 생각하면 도파민이 솟는 느낌이야. 여기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기쁜 나의 젊은 날이잖아!




 

 세련되고 예쁘게 잘 마련해 놓은 관광지를 가는 것, 잘 구비된 최신 아파트에 사는 것 모두 즐거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나를 제일 흥분되게 하는 것은 이렇게 오래된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것, 뒷마당에서 흥정하며 그들의 손때 묻은 물건을 사는 것, 미국의 오래된 하우스에서 불편함 속 설레는 일을 찾는 것들인 것 같아.


 엊그제 이전 집에 있던 모든 가구들을 이사한 집으로 다 옮겼어. 어제는 하루종일 집안 정리를 했고. 이제 오늘부터는 다시 새벽 기상을 하며 열심히 루틴을 만들고, 잘 살아보려고 해. 내가 자주 하는 말 있지? 천천히 내 속도로 가돼 멈추지만 말자는 말. 우리 모두 어제보다는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거야. 이번주 나아의 이야기도 많이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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