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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l 24. 2023

사춘기와 사랑의 열병을 겪고 온 지금

언니에게 보내는 스무 번째 편지



얼마 전에 오랜만에 마사지를 받으러 다녀왔어. 사실 며칠 동안 이유 모를 두통이 너무 심했었어.  지난 경험들을 빌어 생각하면 그럴 때마다 몸 상태가 안 좋을 경우가 많았어서, 힐링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마사지를 받으러 다녀왔어. 사람들 간의 소히 '케미', 합이 잘 맞는 게 중요한데 이 마사지사 분은 나와 케미가 좋은 것 같아. 뉴저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집 주변에 한인 마사지를 갔었는데 그때 경험이 너무 좋았거든! 마사지를 받고 나오는 길에 정말 새로 태어난 것 같아 연신 감탄을 내뱉었던 기억이나.


이 날 같은 그곳을 방문해서 그때 뵈었던 한인 마사지사 분께 배정받아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마사지사 분이 어깨와 목을 만져보시더니 연신 놀라시더라고. 내 몸은 내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어. 며칠간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두통의 이유를 그렇게 알게 됐네!


마사지 특성상 아주 프라이빗한 공간 베드에 엎드려 받기 시작해서, 사실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문뜩 돌처럼 뭉친 내 어깨를 풀어주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사춘기는 겪으셨을 거고
사랑의 열병을 앓을 나이도 지나셨을 텐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으실까요


사실 나도 아주 깊은 통찰력이나 내포된 깊은 뜻을 가지고 하신 소리는 아니신 걸 알고 있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던 내게, 마사지사 분이 해주신 말은 한 줄기 빛 같은 소리였어.


우리 모두 사춘기는 지나 봤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나 날이 서있었는지 몰라. 기억도 어렴풋한 이미 훌쩍 지나가 버린 사춘기지만, 지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들도 그때는 그렇게나 성심성의껏 반응해 버렸는지 원. 모두가 한 번씩은 겪어보는 그 시기는 어린 청준들의 특권, 요즘은 중2병이라고도 불리는 사춘기가 악명 높은 이유도 그런 거겠지.


사랑의 열병 또한 같은 맥락처럼 느껴졌어. 이제는 어느덧 30대가 되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 추억 속에도 지나간 그때 당시엔 가소롭게도 '사랑'이라 믿었던 서툰 날것의 감정들을 겪었었지. 우리 남편은 내가 이런 식으로라도 추억팔이하는 것을 싫어할 테지만 우리끼리 비밀로 얘기하자면, 사랑의 열병은 '앓는다'라고 하잖아. 치료법도 따로 없는 병으로 분명 온 힘껏 충실히 몇 날을 앓았었던 것 같기도 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도 어쩌면 지나고 보면 웃음 나는 추억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 한 때의 사춘기 그리고 한때의 열병이란 말들이 그래서 내게 더 위로의 말로 다가왔던 것 같아. 어쩌면 근래의 나는 덤덤한 위로가 필요했던 걸지도. 이유 모를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고 있는 지금의 내게, 어쩌면 한참 어렸던 그 당시에 나는 더한 것도 겪었다고 일깨워 주는 것 같은 느낌. 어떻게 이 타이밍에 너무 필요한 말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묘하게 웃기기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위안이 됐어. 마사지받는 동안 이 말을 꼭 잊지 않고 공유 해주고 싶어 몇 번을 되뇌었지!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애기가 없는 여자들이라면 필연적으로 임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 사실 무지 자연스러운 과정이겠지 이것도. 어떤 사람들은 간절함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갈팡질팡 하기도 해. 어느덧 결혼생활 6년을 바라보는 나는 전자와 후자 모두 해당했었고, 해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언니의 임신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어.  


우리가 그 어렸을 때 사춘기를 계획하지 않았던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 사랑의 열병을 앓아볼 줄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것처럼, 계속 우리 인생은 우리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요즘이야. 나도 내 미래에 대한 수많은 풀리지 않은 고민을 붙잡고, 세워질 수 없는 계획들을 완벽히 짜 놓으려고 고군분투하며 내 두통을 키워왔던 걸지도.


어쩌면 가까운 몇 년 혹은 다가올 길게 보면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서는 지금 혼란스럽고 답이 없을 것 같은 이 순간도, 한때의 사춘기처럼 의연하게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선택뿐이지 않을까.


정말 유난히도 많이 흔들리는 올해야. 근데 흔들려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해 보려고.

현재의 흔들림을 조금 더 의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도하며!


벌써 스무 번째 교환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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