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꽃을 닮은친구 이야기
오늘은 옆 나라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난 작은 딸 생일날이다.
나는 두 아이의 생일날에는 꼭 수수경단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먹이면서 아이들의 축복을 빌라고 강요하곤 했다. 옆에 없다고 생일이 아닌 건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수수경단을 만들고 미역국을 끓이고 계란찜에 고춧가루로 하트를 그려서 생일상을 차렸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딸에게 보냈다. 내 할 일을 충실히 다 한 것 같아 개운한 마음으로 호수가로 갔다.
5월, 추울까 더울까 피부에 와닿는 공기도 상쾌하고 하늘도 맑다. 상쾌한 발걸음으로 호수 둘레를 산책하는데,
어? 매일 오던 길인데?
활짝 핀 빨강 장미가 있는 장미밭(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이 있었어?"
장미 넝쿨이 감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아치형 문을 뒤덮고 있는 빨강 장미 무더기가 늘어서 있었다. 와! 와! 마음이 흥분되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그곳에 앉아 있다 보니 친구 생각이 났다.
내가 살았던 옛날 동네의 친구네 집 입구에,
5월이 되면 분홍색 겹 장미가 사랑스러운 분홍을 겹겹이 싸고 싸서 탐스럽게 피어올랐다.
봄날의 몇 날이 지나고 나면 장미 넝쿨이 늘어진다.
그때 친구는 반대편에 서있던 소나무 가지와 장미 가지를 철사줄로 연결해서 장미 넝쿨이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해 줬다. 곧 장미는 탐스런 꽃을 피워 그 넝쿨을 타고 아치 모양으로 집 입구를 예쁘게 장식해 주었다.
친구와 나는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가, 사랑스러울 수 있겠냐며 침이 마르게 장미를 칭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나가보니 장미 넝쿨은 잘라져 있었고 장미 줄기 한 가지는 벽 쪽으로 밀쳐져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2집이 나란히 있어 옆 집과 마당 출입구를 같이 써야 하는 단독주택식 빌라였다. 그러니까 옆집사람이 지나다니는데 걸리적거린다고 그 예쁜 장미 넝쿨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해 봄이 오면 동네에서 제일 먼저 형형색색, 가지가지의 꽃을 온 마당에 잔뜩 심고 했던 친구는 왜 허락도 없이 장미 넝쿨을 잘랐냐며 옆집 아줌마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옆집 아줌마도 꽃이 밥 먹여 주냐며 더 목소리를 높인 바람에 싸움은 커 졌고, 우리의 흥분은 며칠째 가라앉지 못했다.
장미꽃이 잘려서, 싸운 자신에게 더 화가 난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더 열정적으로 옆집 아줌마를 미워해준 나는 이사 나올 때까지 그 옆집 아줌마하고 마주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온다.
6개월 전만 해도, 설거지하며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음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친구가 그 입구에서 나온다. "어디가? 오늘도 예쁘네! 잘 다녀와~"하며 일상을 함께한 친구와는 그곳의 재건축으로 인해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일어나서 조금 더 걷다 보니까 양귀비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
아! 또 친구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친구는 마당에 동그랗게 말뚝을 박아놓고, 그 안에 양귀비 꽃을 한가득 심었었다. 어찌나 꽃에 지극정성인지 빗방울이 떨어질라치면 얼른 우산을 씌워 꽃을 보호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양귀비가 가냘픈 꽃인 줄 알았다. 근데 여기 호수에 핀 양귀비를 보니까 센 비가 오고 난 뒤에도 더 싱싱한 꽃대를 자랑하고 서 있었다.
- 친구야~ 양귀비는 우산이 필요 없는 강한 꽃이었어. 어느 누구의 보호도 못 받고 모진 시집살이 오롯이 혼자 이겨낸 너처럼-
하얀 마가렛꽃도 친구네 마당에 가득했었는데, 여기도 마가렛은 환하게 피어 있다.
그렇게도 꽃을 좋아하던 친구는 서울 사람이라면 살고 싶어 하는 부자동네로 이사 갔다. 거기서 친구는 행복하지 않아 한다. 도무지 사람 구경도 못하겠고 창문을 열어보아도 보이는 건 콘크리트 아파트밖에 안 보여 답답해 죽겠다며 하소연하곤 한다. 그래서 꽃만 보면 더 친구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지방으로 이사 오게 된 나는 다행히 호수가가 옆에 있어서 4계절을 느낄 수 있다. 풀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비가 와도 바람 불어도 해가 쨍하게 내리쬐도 좋다.
나는 말하고 싶다. 정신없이 열심히 산 우리였으니, 이제 이사를 하게 된다면 호수가나 산책할 수 있는 공원 옆에 집을 구해 사는 걸 권하고 싶다고.
부자동네가 아니어도 매일 예쁜 호수가를 산책하면서 너무 행복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