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젊었던, 31살의 이야기
.
뜻 밖이었다.
오늘은 집 앞 정보센터에 <감성코칭>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사 선생님이 강의 도중 노래를 한 곡 들려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가수 이선희가 맑은 목소리로 부른 섬집아기.
생각이 났다.
30년 전, 내가 30살에 첫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자장가로 입이 부르트도록 부른 노래였다.
단순히 서정적인 노래라 내 아가에게 평화롭게 불러준 자장가였고, 한 편으로는 내 설움을 대변했던 노래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나도 당연히 남편과의 다정한 시간을 기대하고, 신혼의 달콤한 환상을 가지고 결혼을 했겠지.
남편이 퇴근해 돌아올 저녁시간이 되면 서투른 솜씨를 발휘해 저녁 준비를 해 놓고 아가를 업고 나가본다.
그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17평의 ㄱ자 아파트로 내 또래 신혼부부들이 많이 살았다. 어린 새댁들이 아기를 업고 나와 복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보면 한 집씩, 한 집씩 제시간에 퇴근해온 남편과 팔짱을 끼고 아파트 문을 닫고 들어간다. 그때 나는 거의 언제나 혼자 남았었는데 마음이 슬퍼져서 이 섬집아기를 부르고 있었다. 오지 않는 남편을 그래도 못내 뒤돌아서지 못하고 전철역으로 나가본다.
15분 간격으로 오는 전철역에서 차가 도착하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인파 속에서 끝까지 남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실망을 하나 다시 15분 후의 차를 기다려볼 수 있는 희망이 공존했던 시간이었다.
다음도, 그다음 차에서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날이 허구한 날. 1시간 여를 기다리면서 아기에게 끝도 없이 불러주었던 그 섬집아기.
내 신혼의 달콤한 꿈 -아기를 업고 전철역으로 나가 퇴근해 오는 남편을 기다렸다 만나니 반가워서 기뻤겠지. 열심히 일하고 온 남편을 위해 어설프지만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모습은 사랑스럽겠지. 낮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던 아가는 다정하게 놀아준 아빠가 좋아 신나 하겠지.
남편의 적은 월급을 쪼개어 주택부금도 붓고 500원어치 콩나물을 사다가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치고 알뜰하게 살았다. 그러면서 훗날 내가 풍성하고 성숙한 여인이 되어 이 세상에 따뜻하게 품으려고 했다. 절망스러웠다.
나는 그때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게 너무 슬펐다. 기다리다 많은 날 화가 나있었다.
늦게 들어온다고 토라져있는 날 향해 남편의 기분 또한 좋을 리 없다. 한마디 툭 던지면 싸움으로 싸움으로 치닫았다. 지금 생각하니 내 큰 딸에게 참 미안해 죽겠다. 아기를 업고 많이 화도 냈고 울기도 했고 얼마나 심각 해했겠어, 등 뒤에서 다 느꼈겠다. 내 아이도 이 동요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질까? 물어봐야겠다.
어릴 적엔 그렇게도 부산을 떨던 아이여서 키울 때 내가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참 말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