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바보.
아침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느덧, 올해 연세가 92세나 되어버리신 내 엄마가 요즈음 들어 부쩍 약해진 엄마의 심정을 쏟아내곤 한다.
8년째 실버타운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계셨는데, 점점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져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속상한 마음에 눈물만 나온다고 하신다.
"으째서 이렇게 허리가 아프끄나이~. 무릎에 연골이 다 닳아 없어져 불었다고 안 하냐?
어째서 이렇게 없어져 부렀스끄나이~ 내가 미쳤재! 내가 처녀 때 말이다. 결혼도 안 했고 친정이고 했으니까이~ 쉬엄쉬엄 했어도 누가 뭐라 안 했을 텐디 뭔 미쳤다고 생리가 나와 막 쏟아지는데도 베틀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매일 베를 짰어야~ 미쳤재! 바보 같재! 요새 사람들은 생리 때는 힘든 일도 안 하고 무거운 것도 들지 않는다믄서야~"
그러면서 엄마는 은근슬쩍 자신의 칭찬을 한다.
엄마의 친정엄마가 옷감인 베를 못 짜서 엄마의 할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당하는 걸 본 엄마는 '내가 도와야지!'하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베틀만 사주면 엄마가 베를 많이 짜 주겠으니 베틀을 사달라고 할아버지를 졸랐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엄마께 베틀을 사 주셨고, 18세의 엄마는 매일 밥만 먹으면 베틀 앞에서 베를 짰다.
무엇을 하든지 손이 빠르고 열심히 하는 성격인 엄마는 베를 많이 짰고, 대가족에 머슴들에 많은 식솔을 거느린 할머니께서는 엄마의 친정엄마에게도 너그럽게 대해 주셨다. 그리고 나의 엄마는 할머니께 예쁨을 받아 맛있는 걸 많이 얻어먹을 수 있었다고 자랑을 하신다.
그렇게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위해 허리가 아플 정도로 희생을 하며 살았는데, 왜 허리가 아파야 하냐며 억울해하시는 것이다.
엄마는 이어 말한다. "어저께 어미(며느리)가 왔다 갔는디 팥죽을 2그릇이나 사 가지고 왔더란 말이야~ 한 개만 사 와도 쓸 것을 꼭 2그릇씩 사 와서,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 나눠먹어야 하니까 성질나 죽겄다야. "
엄마는 의사 며느리가 한 그릇 더 사다 준 팥죽에, 화가 나신다. 꼴도 보기 싫은 엄마의 동생까지 챙기는 내 며느리가 아까워서...
우리 자식들은 이제 내 엄마가 너그럽고 인자하고 후덕한 할머니로 늙어갔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갈수록 마음이 좁아들고 그동안 쌓아두었던 화를 감추지 못하신다.
그런 엄마를 보게 되어 속상한 내게 또 말씀하신다.
"내가 바보니까 그랬재이~. 김수환 추기경님이 쓴 책 바보가 바보에게 라는 책이 있잖니?
나도 바보니까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좋은 며느리에 사위에 이렇게 복을 많이 주셨을까?라고 생각이 드니께 마음이 좀 낫드라야~" 라고.
한 그릇 더 사온 팥죽을 지금 같은 실버타운,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이모(엄마의 동생)와 할 수없이 나눠 먹으면서 추기경님이 하신 책 얘기를 했고, 이모의 "나야말로 바보로 살았는디 으째서 나한테는 복을 안 주셨을까?"라는 답변에 엄마는 어처구니가 없어 혼자 웃었다고 하신다.
이모는 엄마에 비해 턱없이 못 똑똑하고, 눈치도 없으며 세상적 계산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의 동생이 그저 좋기만 하고, 똑똑하게 따지지도 못하고, 눈치도 없고 게으르다며 너무나 속상해하는 우리 엄마가 또 말씀하신다.
"지 바보 하고 내 바보 하고 같냐~ "하며 하하하하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 엄마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어 나도 큰소리로 웃었다.
엄마 바보? 이모 바보? 추기경님의 바보! 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하느님이 위에서 보시고 과연 엄마바보가 이모 바보 보고 어처구니없어하는 게 너무 우스워 하하! 하지 않으실는지 모르겠다.
자기 안에 갇혀 본인이 착하다고, 현명하다고, 너그럽다고 한없는 아량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가혹한 심판을 서슴지 않고 해 대는가?
자신만이 옳은 이 세상을 사는 그들에게
당신이 싫은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모자란 게 아니고 당신과 다를 뿐이라고 말해본다.
당신이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도 소중한 한 인격체다 라고 말해본다.
그러면 그들은 그런다.
"너는 신부님 같은 소리만 한다이. 너나 잘해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