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수술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드디어 묵직한 허리 보호대를 풀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호수가로 달렸다. 오전 10시에.
봄이었고 오전 10시의 밝은 기운이 쫙 뻗쳐 온 세상이 눈 부시다.
따사로운 봄햇살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싱그러운 나뭇잎,
초록이 짙어진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맑은 새소리.
가득 담긴 호수 안의 은은한 물결.
그 옆쪽으로 지천에 널려 피어 있는 하얗고 노오란 풀꽃들.
그리고 부드러운 봄바람. 물론 내 마음에도 불어온 봄바람.
이 바람과 소박한 들꽃들이 너무 좋아서 아! 아름다워! 탄성을 지르자
'영혼이 기쁨으로 차올라 내 육신이 만족했나요?'라고 그리이스인 조르바가 물었다. '그럼요! 너무 행복해요!' 내가 대답했다.
이곳에 와서 산 5년 동안, 같은 장소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4계절이 펼치는 다양한 풍경들 때문에 내 마음이 많이 풍요로워졌으며 너그러워진 것 같다.
내가 서울 살 때는 봄이 싫었다. 왜냐고? 온천지에 새싹이 돋고 형형색색 꽃이 피어 세상이 온갖 화려함으로 들뜨면 내 마음은 확 삐뚤어져 버린다.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슬픈 것 같아 괜히 심술이 나고 약이 올랐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화사한 벚꽃나무 밑을 거닐며 봄을 즐기고 있다.
앙상한 가지만 있던 삭막한 겨울이었다가도 어느새 연두색 새싹들이 머물고 있고 예쁜 꽃이 피어 황홀한 세상이 펼쳐지나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 되어 신록이 짙어져 있다. 그럼 나는 또 다가올 가을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미리 걱정을 하곤 한다. 그러다 가을도 지나고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난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다. 하루하루 굳이 행복을 선택해야 할 이유인 것 같다.
매일 나와 함께 해 준 호수가가 없었다면 의지가지없는 이곳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다행히 이곳에는 아담하고 소박한 호수공원이 있어서 변화무상한 자연에 의지해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를 잘 모르지만 이 작가가 '행불행은 조건이 아니다, 선택이다'라고 말했다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여기와 살면서 생활조건이 더 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요즈음이 더 행복한 걸 보면 자연이 나에게 행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풍부한 감수성과 감성을 갖게해 주었다.
그리고 또, 그 작가가 한 말 중에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가 있는데 우리의 일상이 풍요롭기 위해서 중요한 말인 것 같다.
허리가 아팠을 때, 가벼운 산책길을 찾다가 알게 되었는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뺑 둘러 둘레길 같은 길이 있었다. 건강한 나뭇잎들이 길 양쪽에 빼곡히 서서 나를 보호하는 듯 감싸준 아늑한 길이였다. 요즘도 해가 지고 나면 가볍게 걷고 싶어 나가는데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르나? 지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모르겠어? 너무 가까워서 너무 낯이 익어서 무심히 지나치며 산 탓에 주변에 있는 좋은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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