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쯤엔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그 동네에 사는 일기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쉬는 날이라 운동 중이었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곧바로 내려온 일기랑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못 본 동안 산 얘기에 열을 올리는 중 갑자기 " 저 결혼해요!"라고 했다. "엉? 축하해!"
일기의 결혼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를 잃어버리고 온 것처럼 마음이 조금 허전했다. 이제 일기는 나를 찾아 이곳까지 와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 일기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저 일요일에 가려고 차표를 끊었는데 시간 괜찮아요?" 라며. "색시랑 같이 오는 거야?" 당연히 그런 줄 알고 물었더니 혼자 온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 들은 사귀는 사람이 생기면 꼭 붙어 다니더구먼.
일기는 각자의 세계관과 인격을 존중하며 살 거라고 했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가 7년 전, 일기가 28살, 내가 59살 때다. 나는 60살을 코 앞에 둔 동네 아주머니였고 일기는 청소년 정보 센터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어느 날 동네 전봇대에 플래카드가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작가님 강의가 있으니 들으러 오세요" 청소년 정보 센터.
나는 그날 플래카드 밑에 한참이나 서서 낸 용기를 가지고 정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작가 선생님께서 내 준 숙제를 해 갔는데 작가님께서 내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어 주시며 글은 이렇게 솔직 하게 써야 한다고 하셨다. 이 사건은 글을 쓰고 싶었다는 내 안에 숨어있는 욕구를 이끌어냈고 나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정보센터에 일기를 찾아갔다.
글쓰기 모임을 주선해 주라는 나의 제의를 선뜻 수락해 준 일기도 마침 뭔가 실적을 내야 하는 신입사원의 입장이었다. 글쓰기 회원을 열심히 모아 보았지만 3명밖에 모이지 않자 일기도 근무 중에 짬을 내서 같이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글쓰기 회원인 94세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존하여 겨우 걸으시는 전직 교사님 이셨는데 할머님을 만나고 나는 정 현종 시인님의 "방문객" 시를 떠올렸다.
"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만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가, 혹은 한 역사가 오는 일이기도 하다.
할머님이 딱 그렇다. 우리나라의 격동기를 몸소 체험하신 역사의 산 증인이신 만큼 쓸거리가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살면서 친구 모임 한 번 안 가져본 순수 가정주부이지만 나도 남편과 애들 키운 것만으로도 할 말은 누구 못지않게 많았고, 교수가 꿈인 회원도 자폐아들을 키우며 이 사회와 부대낀 아픈 많은 사연들을 쓰면 책 한 권은 뚝딱이라고 했다.
그리고 일기!
건축업을 하신 아버지 밑에서 큰 부자로 살다가, 일기가 중학교 2학년 때 부도가 나서 지하방으로 이사를 했고 그때부터 도시락을 못싸가서 점심시간에는 수도가로 뛰어가 물로 배를 채웠으며 차비가 없어 걸어 다닌 것이 당연했던 청소년기를 보냈고, 대학도 학자금 융자로 4년을 다녔기 때문에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아 융자를 갚느라 또 여유 없는 생활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너무나 바르고 밝은 청년으로 성장해 주어 내가 다 감사했다. 그런 일기가 사귀던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만났던 날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와서 심하게 흔들리던 눈빛으로 글을 썼다. 가난이 원인이었던 이별의 아픔을.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다 같이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런 일기가 너무 안쓰럽고 짠해서 어느 때는 옷도 사다 주고 집에 데려와 김치찌개도 해 주고 뭐든 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어느 날 학자금을 다 갚았다고 우리에게 밥을 사 주면서 " 저 대학원 합격했어요!라고 깜짝 발표를 하더니 며칠 후, " 에베레스트입니다" 라며 큰 배낭을 메고 찍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일기는 그렇게 혼자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아름다운 청년이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바람에 글쓰기 모임은 해체가 되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헤어진 지 5년이나 되었다. 내 딸들 보다도 어린 일기지만 말이 참 잘 통해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던 일기가 " 엄마에게도 이런 말은 안 해요~'라고 하더니 1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나를 보러 와 주었다.
일기는 이번 생에 몇 명 안 되는 소중한 내 인연이다.
이 친구가 나를 보러 여기까지 온다는데 무슨 맛있는 반찬을 해줄까 고민을 하고 조금은 설레었다. 이제 안 줄 알았다가.
아껴 놓았던 문어를 풀어야겠군! 고기반찬도 하나는 있어야겠지? 가지나물, 참! 연근전도 해야겠다고 메뉴도 머릿속으로 다 짰다. 일요일에 온다 했으니까 토요일부터는 재료도 준비하고 해야 하는데 아침 먹은 게 체 했는지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운 게 자꾸만 까부라지는 것이다. 겂이 났다. 무리하다 또 아플까 봐.
요 근래 끄덕하면 아파서 며칠씩이나 먹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딸들에게 혼나는 일이기도 하다.
일기에게 오지 마라 할까? 문자로 하기에는 가벼운 처사가 될 것 같고, 전화를 해야겠지? 고민 고민하다가 이건 아니지!
1년에 한 번,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시간을 내서 나를 보러 오는 천사 같은 손님이 아닌가. 나는 결심했다. 아프더라도 맞이 할 것이다!
그러자 더욱더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일기를 흡족하게 대접해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하늘로 보냈다. 내 마음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가벼웠다. 음식을 만들면서, 이 음식들이 다 맛있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칭찬했다. 잘했어!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 거야!라고.
정성을 들여해서인지 반찬들이 다 맛있게 되었고 특히 문어를 좋아하는 일기는 문어를 참기름 장에 찍어 한 접시나 먹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일기를 보고 있자니,
요즘 읽고 있는 책(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 쓰인 구절이 떠오른다.
" 우리는 모두, 우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느끼고 싶은 것이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나 일지라도 나에게서, 일기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성껏 차린 밥상에서 느끼지 않았을까?
배부르게 밥을 먹은 일기는 지 예비 신부에 대해 신나게 실컷 자랑? 했다. 일기가 신부를 잘 만난 것 같아 내 마음도 정말 좋았지만, 일기를 사위로 맞은 그쪽 장인 장모님이 엄청 좋아한다는 그 말에 살짝 질투가 나는 건 인지상정 인가?
그날 저녁 일기를 보내고 호수가 산책을 하는데 유난히 빨간 노을이 하늘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