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계곡을 발견한 후에

by 이연

시골에 가 본지가 꽤 오래되었다.


술이 아니면 고스톱 치고 볼링치고 당구 치고 온통 치는 세상에서 떠다니 남편, 급기야 인터넷이라는 괴물 하고 접신을 한 그날부터. 그는 그 신에게 풍덩 빠져 정신없이 허우적거렸다. 이 꼴을 그만 보고 싶은 나는 도피를 겸한 시골생활에의 동경지 끄집어 내 시골로 깊은 시골, 강원도 오지 마을 갔다.


18년 전 그때만 해도 사람들 손이 안타 물이 맑고 맑은 계곡과 주위에 자연스럽게 엉켜 있는 나무와 풀과 바위들을 봤을 때 나는 탄성을 질렀다. 태고적에 시절로 돌아가 있는 것 같 착각이 들었다.

파란 맑은 공기와 하얀 물로, 오지마을 사람들 버섯농사를 잘 지어 꽤나 괜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가끔 가서 잘 키워진 버섯만 본 우리는 분당에 어렵게 마련한 집을 쉽게 팔아 강원도에 넓은 땅을 샀다. 그리고 버섯장을 5동이나 짓고(이미 잘하고 계시는 분들도 2동 이상을 하지 않았다) 시골 동네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서 소갈비를 듬뿍 재어 들어가 저녁이면 그야말로 잔치를 하고 부산을 떨었다.

버섯을 잘 키워 금방 부자가 될 거니까 소갈비 값쯤이야 투자지 투자!

한 알뜰만이 몸에 배어있는 시골사람들에게 우리는 다르니까 보란 듯이.

러나 초파리 한 마리만 들어와도 그 큰 버섯 동의 버섯이 다 망가져버린다는 사실은 몰랐다. 농사로 뼈가 다져진 시골 토박이 분들도 버섯을 성공적으로 키우기가 어려운 일인데 감히 우리가 덤벼들었던 것이다.

섯은 키우는 사람의 발소리 듣고 자란다는 작업반장님의 충고가 무색하게도 남편은 망가진다 싶으면 버섯장 문을 닫아걸어 버리고 읍내로 차를 몰고 나가 밤을 새우고 아침에 들어오기도 했고, 밤이면 수시로 동네 아저씨들과 둘러앉아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서 날이 새도록 고스톱을 치곤 했.

도시에서 샌 바가지 시골에서도 줄줄 샜다

시골이라는 '시' 자도 모르고 살아온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엉뚱한 일을 저지른 거였다.

불교 경전 중 (아함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살면서 누구도 첫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 쏘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피할 수가 있다.

고통은 첫 번째 화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어쩌랴, 가 만들어 쏘아 올린 두 번째 화살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매번 계곡로 갔다.

힘찬 물소리 내 설움을 맞기고 엉엉 울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내가 한껏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인생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인 나에게

신은 한 치의 허영도 안이함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엄격히 가리켰다.


이번에도 버섯은 한 개도 못 따고 버섯장을 폐상 한다기에 속은 타들어가지만 버섯종균 심는다고 고생했고 폐상도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걸 알기에 모른 척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삼겹살이 반찬거리 몇 가지 사고 옆집 애들 과자 좀 사고 나니 50000원 버린다.

동네에 들어서자 어느새 진초록의 나뭇잎들이 무성해 있고 밭 옆으로 키가 쑥 자란 풀들 마저도 초록초록 싱그럽다.

맑은 공기가 밝은 햇볕이 내 피부 와닿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는 그곳으로 들어간지도 어언 2년이 되어 간다.

그 넓은 땅을 어찌할 줄 모르고 어수선 해, 갈 때마다 실망을 했더니 번에는 제법 정리가 되 마당이 보였다.

시골 마당에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참나무 장작불을 피우는데 그 장작 타는 냄새가 시골의 정취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작불에 삼겹살을 여든 동네 사람들과 소주 한 씩 하며 버섯 농사 얘기 진지하게 오가는가 싶음 이내 동네 사람들 뒷담화로 이어지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더욱 끈끈한 동지애를 다지며 화기애애 해진다. 그러다가도 그들은 어느새 한 사람씩 슬그머니 자리를 떠 집으로 들 간다.


떠글썩한 시간 뒤에 자기 남겨진 우리 두 사람은 정전이 된 것처럼 깜깜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거실 창 앞으로 훌쩍 자라 서 있는 옥수수만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시계 초침만이 정적을 깨고 몇 바퀴나 하염없이 고 돌아도 남편은 끝까지 애들하고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묻지 않았다. 삼겹살 사 올 돈은 있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끝내 남편은 마누라 있는 남자임을 확인이라도 시킬양 풀 죽은 채로 남자의 욕심을 채운다. 주르륵 물이 감정 없는 내 볼을 타고 러내린다.

머릿속에서만 "는 어떻게 아야 해요? 어떻게 살아요? 1등 해온 작은 딸, 강원도 수재들 틈에 끼어서도 92점이나 평균점수받아온 큰딸, 그 기특한 애들 어떻게 그늘 없이 키울 수 있을까요?"라고 되뇐다.

칠흑 같은 깜깜한 밤이다.

버섯 종자값만 해도 만만치 않아 빚이 쌓여가고 있는 것 같고 버섯 구경은 못 한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

"애들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도둑질해 오래?

내 머릿속에 관리 비니 학비니 돈 밖에는 들어 있는 게 없다면서 소리치고 현관문을 박차고 그는 가 버렸다.

나는 위로 받고 싶었다. 그 사람도 위로 받고 싶었겠다.

그래도 나 좀 위로 해주지...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계곡으로 갔다. 여전히 계곡물은 콸콸 힘이 넘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힘이 하나도 없었는데 물소리 때문에 힘이 조금 났다.

그런데, 이건 뭐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그곳에서 철 지난 진달래꽃이 바위틈 사이에 빼곡 얼굴을 내밀고 피어 있었다.

그렇게나 맑고 선명한 진달래 색깔이 있을 수 있는 건지 너무나 신기했다.

내가 저를 보아주러 올 때까지 지지 않고 기다려 준 것만 같았다.

그래서 활짝 웃어 주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내 마음 풀어졌다.

그래서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아침밥을 같이 먹고 나는 다시 애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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